14 요코야마 유이치

〈광장〉은 요코야마 유이치의 만화 『광장』(2019)에서 선별한 14쪽으로 구성돼 있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움직이는 무대에서 전개되는 화려한 공연과 흥분한 관중의 함성이 뒤섞인 웅장하고 광적인 시공간을 다룬다. ‘네오 망가’로 불리는 요코야마의 작품 세계를 가장 타협 없이, 시끄럽게 보여 주는 만화로, 대사 없이 오직 행진, 춤, 환호, 폭발 등을 묘사한 밀도 높은 그림과 모든 컷에 등장하는 “도도도도(ドドドド)”, “고로고로(ゴロゴロ)”, “파카파카(パカパカ)” 같은 의성어로 시각적 소음을 일으키며 보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작가가 서사 대신 만화에 담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해석할 수 있고 시간이 흘러도 레트로가 되지 않는 보편성이다. 그는 시대, 국가, 계절, 공간, 등장인물의 인종이나 성별 등 특정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공들여 배제하며, 모든 해석을 독자에게 맡긴 채 한 장면 한 장면의 시각적 재미에 집중한다. 외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할 수 없는 대사보다 의성어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코야마의 만화에서는 시간이 균일하게 흐른다. 그는 의성어로 컷의 크기와 밀도를 조절해 한 컷에 2초라는 같은 시간을 담고, 어떤 풍경이나 공간, 사물을 연이어 그리는 방식으로 정지된 이미지에 움직임을 부여하며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광장〉은 대략 80초의 시간을 담고 있고, 225쪽에 걸쳐 행진만 이어질 뿐 끝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광장』은 24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시각적으로 연결된 듯 보이지만 컷들 사이에 어떤 의미적 연결 고리도 없는 요코야마의 작품은 보는 이가 개입하는 만큼 재미도 커지는 게임과 같다. 누군가는 모든 컷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를 느끼고 누군가는 금방 읽기를 포기하지만, 작가는 “시각 예술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할 뿐 손쉬운 재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럴 법한 의미를 부여하며 재미를 찾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광장
2019년
천에 디지털 프린트, 283×2,440cm
지도
1F
요코야마 유이치
일본 미야자키현 출생 /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활동

요코야마 유이치는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유화를 공부하고 순수 미술을 선보이다가 2000년부터 “시간을 그릴 수 있는” 매체인 만화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속도감 넘치는 선과 의성어 등을 소재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그의 작풍은 ‘네오망가’로 불린다. 만화 작품집으로 『네오만엽』(2023) 『플라자』(2019) 『아이슬란드』(2016) 『세계 지도 사이』(2013) 『룸』(2013) 『베이비 붐』(2009) 『아웃도어』(2009) 『정원』(2007) 『트래블』(2006) 『뉴 토목』(2004) 등이 있고, 화집으로 『패션과 밀실』(2015) 『베이비 붐 파이널』(2010) 『요코야마 유이치 컬러 화집』(2006) 등을 펴냈다. 저작 대부분이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번역 출판됐다. 대규모 첫 개인전 《요코야마 유이치의 네오망가 결산: 나는 시간을 그린다》(가와사키 시립 미술관, 가나가와, 2010) 이후 일본 안팍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고, 매년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해 왔다. 도쿄의 모리 미술관,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상하이의 룽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