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에즈키엘 아키노

“이 작품은 컴퓨터 언어에 기반하지만, 창작 과정은 손으로 그린 스케치나 카펫 직조에 가깝다. 아이디어 구현에 복잡한 수작업이 동반되고, 그 과정이 보이지 않는 소리를 다룰 수 있는 물질로 바꾸며 작품에 개성을 불어넣는다.”

기호로 가득한 악보에서 그래픽적 특성을 포착하고 이를 시각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에제키엘 아키노가 오래 주목해 온 주제다. 〈C조에서 오르내림, Op.1 No.1〉에서 에즈키엘은 음악 패턴을 시각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마치 컴퓨터가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즉흥 연주를 하듯 끊임없이 곡을 생성하는 제너레이터를 만들고, 그 소리를 악보에 흑백 피아노 건반이 포개지는 형태로 표현하며 넘실대는 시청각 지형으로 청중을 초대한다.

불확실성과 우연성에 열린 이 작품은 작가가 작곡과 연주에 필요한 규칙을 만들지만 그것을 완성하지는 않는다. 음악은 그 씨앗에 해당하는 악절의 ‘모양’을 무작위로 쪼개고 늘리고 때로 요소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변주되면서 C조 안에서 조금씩 다른 선율을 이어 가고, 곡을 단순화한 악보라 할 수 있는 그래픽은 알고리즘에 따라 유동적인 퍼포먼스를 구현한다. 음악이 아니라 그것을 생성하는 시스템에 주목한 브라이언 이노의 선구적인 작품이나 순서가 정해진 53개의 짧은 악보 모듈과 간단한 규칙으로 연주자에 따라 곡이 변하도록 만든 테리 라일리의 「C조에서」가 겹쳐지는 지점이다.

이 작품은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반복 없이 15,000시간 동안 지속된다. 이때 반복 없음이란 교차로를 오가는 사람과 자동차의 흐름과 같은 비반복이다. 일정 요소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교차로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듯, 이 작품 또한 테마를 반복하지만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과 타이밍, 방식은 매번 다르다.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며, 사람들은 작품이 공개된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버전의 시청각 이벤트를 만난다.

C조에서 오르내림, Op.1 No.1
2020년
웹 사이트, 사운드, 15,000시간
지도
1F
에즈키엘 아키노
필리핀 케손시티 출생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에즈키엘 아키노는 그래픽 디자이너 겸 프런트 엔드 개발자이자 크리에이티브 코더다. 디자인과 코딩, 그 사이의 모든 요소를 창작 도구로 활용한다. 일상과 사물, 기억과 우연에서 발견한 패턴을 스크린 중심의 디지털 매체로 유쾌하게 구성·재구성해 기능적이고 견고하며 우아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필리핀 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고, 위트레흐트 예술 학교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