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열며
타이포잔치 202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문자와 소리, 시각과 청각, 사물과 신체를 연결하고 실험과 실천을 촉발하는 타이포그래피에 주목합니다.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정체성과 권력의 맥락에서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충돌, 소거, 생성과 같은 언어의 틈새를 다룹니다.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시각과 청각을 상호 번역하거나 교차시켜 서로 다른 감각이 만드는 차이를 드러냅니다.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반복과 변화, 어긋남에서 문자와 소리에 담긴 리듬을 찾고 그 바탕에 자리한 노동과 공예성을 환기합니다.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기술과 매체를 활용해 선형적 질서를 뒤섞는 디지털 화음 또는 불협화음에 호응합니다.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시각 기호를 벗어난 구음과 움직임에서 즉흥성과 우연을 발견하고, 사물과 신체 사이에서 진동하는 타이포그래피의 활기를 나눕니다.
예술 감독
박연주
큐레이터
신해옥, 여혜진, 전유니
전시 제목에 쓴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1982)에서 각각 인용, 번역했습니다. 이 제목은 곧 들려올 소리를 암시하고 읽힌 문자의 흔적을 내포합니다.
Greeting
Typojanchi 2023: International Typography Biennale—Open Quotation Marks, Close Quotation Marks focuses on typography that connects letters and sounds, sight and sound, objects and bodies, and sparks experimentation and practice.
Open Quotation Marks, Close Quotation Marks addresses linguistic interstices, such as the collision, erasure, and creation of spoken and written language in the context of identity and power.
Open Quotation Marks, Close Quotation Marks cross-translates or intersects vision and hearing to reveal the different senses' differences.
Open Quotation Marks, Close Quotation Marks finds the rhythm of letters and sounds in repetition, change, and dissonance, and recalls the labor and craft behind them.
Open Quotation Marks, Close Quotation Marks responds to a digital chord, or dissonance, that utilizes technology and media to disrupt linear order.
Open Quotation Marks, Close Quotation Marks finds spontaneity and serendipity in sound and movement outside of visual symbols, and shares the vitality of typography that oscillates between objects and bodies.
Artistic Director
PARK Yeounjoo
Curators
JEON Yuni, SHIN Haeok, and YEO Hyejin
The phrases “open quotation marks” and “close quotation marks” in the exhibition title are extracted from Theresa Hak Kyung Cha’s DICTEE. The title alludes to the sounds we are about to hear and the traces of the letters we have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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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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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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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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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로운 질서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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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타이거 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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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크사베리 키르클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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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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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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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ㅈㅈㅈㅈ 제롬 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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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트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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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럭키 드래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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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헤르디마스 앙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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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에즈키엘 아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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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요코야마 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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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에릭 티머시 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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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요쎄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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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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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슬라브와 타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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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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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김뉘연•전용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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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머티 인도 고전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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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티슈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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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크리스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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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야노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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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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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손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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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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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마니따 송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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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소피 두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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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아스트리트 제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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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신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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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양위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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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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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문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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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박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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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오케이오케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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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박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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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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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그래픽』 50호
프로그램
공연—종이울음
작가:
손영은
일시:
1회. 9월 20일 (수) 오후 2시
2회. 9월 23일 (토) 오후 2시
장소:
문화역서울284 / 2층 그릴
내용:
폭 1미터, 길이 100미터의 대형 두루마리를 대본으로 하는 낭독 공연.
공연—칠판 스크리보폰
작가:
양위차오
일시:
1회. 9월 20일 (수) 오후 4시
2회. 9월 23일 (토) 오후 4시
장소:
문화역서울284 / 2층 회의실
내용:
대만과 한국의 민담을 바탕으로 쓰기 동작과 구전 해설, 칠판 표현을 합친 구술 즉흥 공연.
공연—라숙
작가:
헤르디마스 앙가라
일시:
1회. 9월 24일 (일) 오후 6시 30분
2회. 10월 7일 (토) 오후 6시 30분
3회. 10월 8일 (일) 오후 6시 30분
장소:
문화역서울284 / 1층 3등 대합실
내용:
익숙한 디지털 환경을 작가의 데스크톱에 재현한 후 해킹하거나 작동 오류를 일으키며 자유로운 사용자 경험을 유도하는 실시간 스트리밍 현장 공연.
워크숍—대체 텍스트 워크숍
작가:
새로운 질서 그 후
일시:
1회. 10월 6일 (금) 오전 11시-12시 30분
2회. 10월 6일 (금) 오후 2시-3시 30분
장소:
문화역서울284 RTO
내용:
비장애인의 웹 사용자 환경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대체 텍스트를 직접 작성하며 그 역할과 필요성을 공유하는 워크숍.
대화—제3작품집
작가: 김뉘연·전용완 일시: 10월 6일 (금) 오후 5시 장소: 문화역서울284 RTO 내용: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를 이어 쓰고, 다시 쓰고, 다르게 쓴 『제3작품집』에 관한 관람객과의 대화.
강연—회색 연구
작가: 이한범 일시: 10월 13일 (금) 오후 5시 장소: 문화역서울284 RTO 내용: 회색을 프로토콜 삼아 활자 영역과 소리 영역을 교차시킨 리서치 결과물을 공유하는 ‘렉처 퍼포먼스’.
팝업 서점—더 북 소사이어티
내용: 전시 기간 동안 1층 복도에서 더 북 소사이어티가 팝업 서점을 운영합니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집, 더 북 소사이어티가 전시 주제에 맞춰 추천하는 도서들, 타이포잔치 2023 개막과 함께 발행된 『그래픽』 50호 등 70여 권의 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후원사 전시—우아한형제들
내용: 타이포잔치 2023 후원사인 우아한형제들이 전시장 1층 복도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100개의 ‘수’와 만복을 상징하는 100개의 ‘복’자를 글림체로 수놓은 작품 〈배민 글림체 백수백복도〉를 선보입니다.
Program
Performance—Crisp
Artist:
SOHN Youngeun
Date:
September 20 (Wed.), 2:00 p.m.
September 23 (Sat.), 2:00 p.m.
Venue:
Culture Station Seoul 284 / Grill (2F)
Content:
A recitation performance using a large scroll measuring one meter in width and 100 meters in length as its script.
Performance—Blackboard Scribophone
Artist:
YANG Yu-Chiao
Date:
September 20 (Wed.), 4:00 p.m.
September 23 (Sat.), 4:00 p.m.
Venue:
Culture Station Seoul 284 / Meeting Room (2F)
Content:
A unique oral impromptu performance that blends writing actions, verbal commentary expressions, and blackboard drawings from Taiwanese and Korean folktales.
Performance—RASUK
Artist:
Herdimas ANGGARA
Date:
September 24 (Sun), 6:30 p.m.
October 7 (Sat), 6:30 p.m.
October 8 (Sun), 6:30 p.m.
Venue:
Culture Station Seoul 284 / The 3rd Class Waiting Room (1F)
Content:
This live performance, streamed in real-time into the exhibition space, provides a glimpse into the artist's computer as it simulates hacks and errors, inviting contemplation on the experience of utilizing digital tools without constraints.
Workshop—Alt Text Workshop
Artist:
After New Order
Date:
October 6 (Fri), 11:00 a.m.-12:30 p.m.
October 6 (Fri), 2:00 p.m.-3:30 p.m.
Venue:
Culture Station Seoul 284 RTO
Content:
This program highlights the importance of ‘alternative texts,’ often overlooked in the interface for non-disabled web users. It encourages participants to create their own alternative texts.
Conversation—The Third Thing
Artist: KIM Nuiyeon & JEON Yongwan Date: October 6 (Fri), 5:00 p.m. Venue: Culture Station Seoul 284 RTO Content: A discussion with the audience about The Third Thing (2023), a work that explores, revises, and reimagines Theresa Hak Kyung Cha’s DICTEE (1982).
Lecture—Studies in Gray
Artist: LEE Hanbum Date: October 13 (Fri), 5:00 p.m. Venue: Culture Station Seoul 284 RTO Content: A lecture performance presenting the results of a research project that connects typography and sound, using the color gray as its framework.
Pop-up Bookstore—The Book Society
Content: The Book Society operates a pop-up bookstore in the first-floor corridor during the exhibition. You’ll find over 70 books, including collections of works by participating artists, books selected by The Book Society to align with the exhibition theme, and the 50th issue of GRAPHICS, released in conjunction with the opening of Typojanchi 2023.
Sponsor Exhibition—Woowa Brothers Corp., Baemin Geullim Baeksubaekbokdo
Content: Woowa Brothers Corp., one of the Typojanchi 2023 sponsors, presents “Baemin Geullim Baeksubaekbokdo,” an embroidered work with 100 “sue (수)” characters symbolizing longevity and 100 “bok (복)” characters symbolizing happiness in the first-floor corridor during the exhibition.
크레디트
타이포잔치 202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2023년 9월 19일(화)–10월 14일(토)
문화역서울284
예술 감독
박연주
큐레이터
신해옥, 여혜진, 전유니
협력 큐레이터
김쥬리
코디네이터
이주현
공간 설계·가구 디자인·설치
중간공간제작소(김건태, 민덕기, 장기욱)
설치 도움
강혜경, 길아름, 김광철, 김미소, 김병구, 김보경, 김준형, 나희원, 박서진, 이범항, 이영석, 임예찬, 최인혜, 허나경
전시 아이덴티티
프론트도어
도록·웹 사이트·부클릿 편집
전유니, 이주현, 이정신
도록·웹 사이트·부클릿 디자인
프론트도어
번역
서울리딩룸(박재용)
웹 사이트 개발
문정주
자막·모션 디자인
와우산 지키미
사진·영상
글림워커스
기자재 설치
올미디어
작품 운송
솔로몬아트
시공
새로움아이
운영
에스씨지엠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협력
국립한글박물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조직위원회
유정미, 장동광, 김영수, 김홍필, 최슬기, 안병학, 이재민, 김광철
사무국
류영미, 이홍규, 황동호
프로젝트 협력
계간 『그래픽』, 한국영상자료원, 전주국제영화제
후원
두성종이, 네덜란드 크리에이티브 인더스트리즈 펀드, 우아한형제들,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안그라픽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대만 국가문화예술기금회
미디어 후원
네이버, 월간 〈디자인〉, 비애티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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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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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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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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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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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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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후원
1 이동언
“(말을 시작하는 들숨) 이 작품은 사람들의 대화를 ‘말과 말 사이에 생기는 여백’과 ‘비언어적 소리’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관찰한다. 말의 여백은 대화에서 문장 부호의 흔적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말할 때 ‘잘 지내십니까 물음표’, ‘네 잘 지냅니다 마침표’, ‘어머나 세상에 느낌표 느낌표’ 같은 식으로 문장 부호를 발음하지 않는다. 문장 부호 자체가 말의 흐름이나 억양 등 구술 언어의 특성을 문자로 표현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니 문자가 소리가 될 때는 보통 그 역할이 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때때로 이 문장 부호가 살아남아 말과 말 사이에 여백을 만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종종 모국어 문장을 머릿속에서 영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문장 부호를 특정 단어로 대체한다. 일본인 Y는 말을 끝맺을 때마다 ‘something like that’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Y씨에게 마침표와 같다. 네덜란드인 A의 말에는 ‘let’s say’라는 표현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그에게 쉼표이자 다음 문장을 생각하려고 말을 잠시 멈출 때 쓰는 습관적인 접속사 같은 것이다.
〈의미 형성에 필요하지 않은 어떤 습관적 발성〉은 문장 부호가 대화의 여백을 어떤 방식으로 채우는지 살피며, 정적, 침묵, 공기, 기다림, 메아리 등 말의 여백이 가지는 다양한 존재 양식을 알아본다.
이 작품에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가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를 듣는 장면을 담은 조지프 세번의 그림이 등장한다. 이는 비언어적 소리, 즉 의미가 없거나 말에서 의미를 제거한 소리 자체에 주목해 그것이 다른 감각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살피고, 소리 있음 사이에서 소리 없음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관람객들이 입으로 내뱉는 소리와 숨에 담긴 공간감, 무게, 질감, 자극을 존 키츠의 시선으로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말을 끝내는 날숨)”
2023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분 7초

한국 서울 출생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이동언은 그래픽 디자인을 사고와 탐구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다. 그에게 그래픽 디자인은 기존 개념을 조합해 새로운 정의를 제안하고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찾는 사고의 도구이자,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지에 주목해 언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사용 방식을 관찰하는 탐구의 도구다.
2 조효준
〈문자들: 쏐뽙힗〉은 조효준이 2022년 발표한 〈문자들〉을 타이포잔치 2023의 주제를 담아 재구성한 작품으로, 작가가 디자인한 가변 폰트 〈화이팅〉을 사용한다. 이 폰트는 세 개의 축(두께, 너비, 기울기)으로 구성되며, 두께 10에서 100픽셀, 너비 1,000에서 2,000픽셀, 기울기는 -45에서 45도 사이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축을 설정할 수 있다. 〈문자들: 쏐뽙힗〉은 관람객이 직접 제어 장치를 움직여 〈화이팅〉의 세 축을 조절하며 화면에 표시되는 글자꼴을 원하는 형태로 바꿔 볼 수 있는 설치 작품이다.
작가가 〈문자들: 쏐뽙힗〉에 사용한 문자들은 어도비가 산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정한 한글 폰트 국제 규격 ‘Adobe-KR-9 캐릭터 컬렉션, 보충 0’ 목록에서 탈락한 음절(8,392개) 중에서도 발음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들이다. 즉, 한글 자모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11,172개 음절 가운데 한글 폰트를 디자인할 때 권장하는 2,780개에서 빠진 음절들이다. 그런 만큼 ‘쏐’, ‘뽙’, ‘힗’, ‘깶’, ‘롷’, ‘돾’, ‘삌’, ‘쑟’ 같은 자모의 낯선 조합들은 눈에도 설고, 발음해 본 적도 드물다. 작가는 제어 장치를 활용해 이 생경한 문자들의 두께, 너비, 기울기를 바꿔가면서 글자의 모양에 따라 소리의 뉘앙스가 달라지는 공감각을 경험하고, 현대 한글이 호명하지 않는 문자의 소리를 상상해 보길 제안한다.
조효준은 코우너스라는 팀 이름으로 참여한 타이포잔치 2015에서 〈사장님 화이팅〉이라는 레터링 작품으로 〈화이팅〉을 처음 선보였고, 2023년 말 상용 폰트로 출시할 예정이다.
2022–2023년
인터랙티브 설치, 가변 폰트를 적용한 인터랙티브 소프트웨어, 미디 컨트롤러, 모니터, 설치 약 170×123×98cm
협업
정효(인터랙티브 미디어 개발)

한국 과천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조효준은 2012년부터 서울에서 김대웅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겸 리소 인쇄소 코우너스를 운영하고 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이디어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데 관심을 두고 그래픽 디자인 작업과 리소 인쇄 워크숍을 병행하며, 기획부터 디자인, 제작까지 모든 단계를 스스로 수행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3 양으뜸
〈렉처 디자인〉은 유튜브에서 영어권 화자가 진행하는 디자인 강의를 자동 번역 기능을 사용해 시청할 때 발견되는 한국어 자막 오류를 모티프로 한다. 자동 번역은 종종 두 언어의 어순 차이나 단어의 중의적 의미 등을 이유로 오역을 생성하는데, 잘못 번역된 그 문장들은 얼핏 보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아포리즘이나 선언문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렉처 디자인〉은 오역된 한글 자막을 수집하고 선별해 재구성한 한 편의 강의 영상과 같은 이름의 책으로 구성돼 있다. 양으뜸은 자동 번역 기능이 만드는 예상치 못한 맥락이나 기묘한 뉘앙스를 창작 도구로 삼아 디자이너의 태도와 디자인을 둘러싼 세계를 오류적 시선으로 제시한다. 더불어, 소리를 문자로 문자를 다시 소리와 이미지 변환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달라진 창작 환경을 언어를 소재로 실험하며 그 가능성과 한계를 탐색한다.
2023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1초, 단행본(양으뜸, 『렉처 디자인』, 2023년, 종이에 오프셋 인쇄, 무선철, 14.8×10.5cm, 192쪽)
협업
유튜브 자동 자막(스크립트 영한 번역), 파파고·구글 번역(스크립트 한영 번역), DALL·E 2(스크립트 이미지 생성, 영상 오프닝 타이틀 디자인), 어도비 포토샵 베타(스크립트 이미지 확장), 미드저니(영상 오프닝 이미지 생성), 파파고(목소리), 김을지로(영상 디자인)

한국 제주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양으뜸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동아시아의 근현대 일상·대중·하위문화를 사랑하고, 복잡한 무늬의 옷을 입고 단순명료한 논리와 형태로 디자인하기를 즐긴다. 그래픽 디자인과 코미디의 관계를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워크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디자인 스튜디오 ‘콰칭’을 운영하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4 새로운 질서 그 후
새로운 질서 그 후는 타이포잔치 2023 웹 사이트에 게시할 모든 이미지의 대체 텍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웹 사이트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대체 텍스트는 온라인상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글로, 컴퓨터 화면 낭독 소프트웨어인 스크린 리더를 쓰는 시각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이미지를 파악할 때 사용한다. 대체 텍스트는 비장애인이 마주하는 웹 사용자 환경에서는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웹 사이트 제작 시 그 역할이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해 대체 텍스트 입력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 듣기〉는 이미지를 문자로, 문자를 다시 소리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웹을 경험하는 사용자의 존재를 상기하며 오늘날 웹이 모두에게 평등한 공간인지 묻는다.
[ 리서치랩 ] ↗
2023년
웹 사이트, 타이포잔치 2023 웹 사이트의 모든 이미지에 관한 대체 텍스트

윤충근·이지수 한국 서울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이소현 한국 서울 출생 /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활동
새로운 질서 그 후는 웹의 기본 정신인 개방, 공유, 참여를 가치 있게 여기며 오늘날 웹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탐구하는 실천적 공동체다. 사용자 자율성, 웹 접근성, 플랫폼과 같은 이슈에 관심을 두고 이에 관한 의문과 실천을 웹 사이트, 설치, 워크숍, 출판 등의 방식으로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든 소장품(7,585점, 2021년 기준)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를 직접 작성해 〈국립대체미술관〉을 제작한 바 있고, 국내외 미술관 소장품의 개방형 정보 열람 이미지를 대체 텍스트로 선보이는 〈대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5 타이거 딩선
“나는 탄 린의 ‘환경에 스며든 문학’이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이 개념은 문학을 거의 ‘벽지’처럼 여기고, 특히 학술 환경에서 흔히 강조하는 ‘자세히 읽기’보다는 일상에서 일시적으로 마주하는 것들을 얕게 읽는 것이 특권으로 여긴다. 기고자들에게 받은 텍스트가 ‘순서 없이’ 배열되거나 동시에 여러 다른 방식으로 제시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여기서 강조점은 미리 규정된 특정한 의미를 얻기 위해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부터 텍스트에 관해 더 일반화되고 다양한 미적 감각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동한다.”
기고 받은 글을 재배열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리딩 머신〉과 웹에 특화된 읽기 형식을 실험하는 열여덟 개의 웹 사이트 시리즈인 〈똑같은 이미지는 절대 보고 싶지 않아!〉는 모두 ‘비목적론적 독해’를 유도하는 웹 플랫폼이다. 타이거 딩선은 소설의 형식적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 문학 작품들*에서 받은 영감을 웹에 접목하고, 웹 환경이 제공하는 행동 유도성을 최대한 활용해 인쇄 매체로 구현할 수 없는 비선형적이고 동적이며 쌍방향으로 기능하는 낯선 방식의 읽기를 제안한다.
딩선은 이런 작업의 배경으로 “언어에 따른 공간 은유 방식의 다름”을 꼽는다. “예를 들어 중국어는 시간의 선후를 공간에서 ‘위아래’로 생각한다. 과거는 위쪽이고 미래는 아래쪽이다. 반면 영어는 과거를 뒤쪽에, 미래를 앞쪽에 둔다. 단어나 개념을 공간에 배열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공간 배열조차 문화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
작가는 글을 재구성한 후에도 원문의 주제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단위’를 찾고(“문단이나 문장 수준에서 글의 연속성을 유지할지, 아니면 단어나 낱글자 단위로 섞는 게 더 합리적일지”), 생성 프로그램으로 이를 무작위로 배열, 재배열하며 글과 유희적인 관계를 맺는다. 게임 음악 같은 음향을 활용해 단어가 움직일 때마다 그 생성적 특성을 강조하며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소리, 음운, 모양, 색 등의 시청각 요소나 상징도 읽기 대상에 포함해 콘텐츠에 시적 감각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서사 만들기를 시도한다. 웹에 기반한 타이거 딩선의 비목적론적 독해는 다중성, 모순, 자의성에 주목해 읽기의 본질을 탐색하며 타이포그래피나 그래픽 디자인이 매끄럽고 총체적이며 단일한 해석을 요구하는 체제의 도구로 기능하는 데 저항한다.
마크 Z. 다니엘레프스키가 쓴 소설 『나뭇잎의 집』, 훌리오 코르타자르의 『사방치기』,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 , 특히 탄린의 작품으로는 『Blipsoak_01』과 『일곱 개의 통제된 어휘』 등이 있다.
2020년–진행 중
인터랙티브 소프트웨어, 사운드
글 제공
S.B., 사일러스 첸, 리비 마르스, 테이아 플린, 호르헤 팔라시오스, 리비 헤이스, 그레타 황 스카거린드, 저스틴 응우옌응우옌, 단닝 니우, 알리 딥, 아유시 코와라, 원 주앙,에마 켐프, 폴 부이그, 자이나브 알류, 해나 조이스, 라라 칼레치크
조언
폴 술러리스
똑같은 이미지는 절대 보고 싶지 않아!
2019년
열여덟 개의 웹 사이트

미국 뱅고어 출생 / 미국 뉴욕에서 활동
타이거 딩선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틱톡 이론가다. 브라운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주로 시 문학, 웹 기술, 디지털 미디어 문화의 교차점에서 언어를 탐구하는 창작 활동을 선보이며, 웹 사이트로 개인 작업과 대중 참여 작업을 꾸준히 공유한다.
6 크사베리 키르클레프스키
“엘이디 스크린은 광고판이며, 필요에 따라 발명되고 거기에 완전히 종속된 미디어 디스플레이로, 우리를 파고들어 행동을 유발하게 만드는 설득과 관계돼 있다. 구매하고, 보고, 부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광고에 길들어 있고 광고의 표현 방식과 공격적인 언어, 커뮤니케이션 속도에 익숙하다. 만약 누군가가 사회 친화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 이 매체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크사베리 키르클레프스키는 이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폴란드 그단스크 도심의 몇몇 엘이디 전광판 소유주를 설득해 다섯 개의 대형 화면에서 비상업적인 애니메이션을 17,000회 송출했다. 이후에는 시내버스 총 170대에 설치된 디스플레이에서 같은 작품을 재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작품을 재구성하고 새 작품을 더해 세 개의 화면으로 〈배너들〉을 선보인다. 느리게 껌벅거리는 눈동자, 이와 반대로 화면 속을 빠르게 뛰어다니는 글자, 점멸하는 “NEED TO HAVE”, 움직이는 모래시계, 초시계, 하염없이 이어지는 라틴 알파벳 쓰기 등 열한 개의 애니메이션은 음향을 포함하지 않지만 분절, 반복, 움직임 등 청각적 상상을 자극하는 시각 요소로 작가의 의도를 강조하며 공감각을 불러일으킨다.
2015/2023년
3채널 비디오, 흑백, 무음, 애니메이션 11편(세트), 22분 47초, 반복 재생

폴란드 그단스크 출생 /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활동
크사베리 키르클레프스키는 크리에이티브 코딩 예술가다. 폴란드 그단스크에 있는 미술 아카데미 그래픽 학과를 졸업했고, 졸업 작품인 〈배너 전시회〉(2015)는 폴란드 미술 아카데미 최우수 졸업 작품으로 문화부 장관상을 받았다. 인터랙티브 설치, 생성형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 피지털 조각, 공공 공간에서 구현되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주로 생성형 미술과 넷 아트 분야에 집중하며, 이를 위해 신기술, 프로그래밍, 광고 매체와 텔레비전 장비를 활용한다. 가장 최근 프로젝트로는 인터랙티브 조명 설치 작업인 〈FLUX〉(마이애미 아트 위크, 마이애미, 2023), 〈ENTER 2023〉(크로마 뮤지엄, 베를린, 2023), 〈ENTER 2022〉(Nxt 뮤지엄 커미션, 암스테르담, 2022), 막스 쿠퍼와 협업한 생성형 음악 웹 사이트 〈Symphony in Acid〉, 피지털 조각 연작 〈CTRL_DAT(케이트 바스 갤러리, 취리히, 2022) 등이 있다.
7 이수성
“성우라는 직업은 흔히 ‘천의 목소리’로 표현되지만, 실제 한 사람의 성우가 낼 수 있는 목소리는 많아도 손으로 다 꼽을 수 있는 정도다. 다만, 인물의 나이나 성격, 신체 조건, 정서 등에 따라 호흡, 말투, 억양, 표정, 입의 크기 등을 달리하면서 목소리에 각 인물의 개성을 담으려고 한다.”
〈100 포스터 100 목소리〉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연계 전시 《100 필름 100 포스터》에 출품된 100개의 포스터에 목소리를 붙인 작품이다. 이수성은 성우의 일을 “듣는 이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자 납작하게 누운 활자를 일으켜 세워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이 작품에서는 포스터 디자인을 대본으로 삼는다. 작가는 디자이너가 포스터에 사용한 활자체, 사진, 색, 조판 특성 등 여러 시각 요소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반영해 100개의 영화 제목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시각 이미지가 만드는 청각성을 목소리로 구체화한다.
2023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3분 20초
포스터 이미지 제공
《100 Films 100 Posters》 참여 디자이너 100인
이 작품은 타이포잔치 2023과 《100 필름 100 포스터》의 공동 프로젝트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작 지원을 받았습니다.
《100 필름 100 포스터》
주최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주관 계간 『그래픽』
큐레이터 포뮬러(채희준·신건모)
100films100posters.com

한국 성남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이수성은 중학생 때 애니메이션을 보며 성우나 애니메이터를 꿈꿨다. 대학에서는 회화를 공부하고, 설치 조각 작업을 선보이거나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서른 중반이 되어 다시 성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 중이다.
8 이윤정
〈설근체조〉는 혀와 혀뿌리의 운동으로 안무의 기술을 구축하면서 춤의 역사와 맥락에서 누락되어 온 대상인 혀에 주목해 신체 운동이 예술 작품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실험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2019년에 초연한 이윤정의 공연 〈설근체조〉의 영상 버전으로, 작품 구성은 공연과 같다.
영상은 혀가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으로 시작해 안면 근육을 움직이는 장면과 몸 전체를 움직이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신체 기관으로 혀가 가진 운동성을 보여 주고, 혀의 근육이 온몸의 근육과 이어져 있음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체조’로 불리는 혀의 운동은 작가가 구성한 스코어를 따라 진행된다. 거기에는 ‘바비부베/바비부베’나 ‘사시수세/사시수세’처럼 의미 없는 음절 조합에서부터 ‘컨텅프헝’, ‘데낄라’ 같은 외국어 발음이 표기돼 있지만, 여기서 문자는 오로지 혀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시각 기호로 작동할 뿐 그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이 작품은 혀에 달라붙은 관습적인 상징이나 해석을 해체하고, 근육으로 이루어진 감각 기관이자 언어를 생성하는 발화 기관으로 혀를 소환한다. 이윤정은 혀와 혀뿌리의 움직임을 몸의 스코어로 치환해 혀의 물질성으로부터 개별 이미지를 생산하며, 그로부터 신체를 매체로 하는 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2020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2초
제작 후원
구찌

한국 인천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이윤정은 안무가다. 춤, 안무, 퍼포먼스, 예술 교육, ‘소매틱’ 수련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선보이고, 사회와 예술의 접점에서 몸의 잠재성을 탐구하며, 소수자와 미약한 몸들이 공명하고 공생하기 위한 안무 방식을 연구한다. 주요 작품으로 〈설근체조〉(서울문화재단/신촌극장/대림미술관, 서울, 2019-2022), 〈내장진동〉(국립현대무용단, 서울, 2021), 《패스, 킥, 폴 앤 런》에서 선보인 〈동시다발〉(아트선재센터, 서울, 2020), 〈1과 4, 다시〉(플랫폼엘, 서울, 2018), 〈점과 척추 사이〉(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8) 등과 공동 작업 〈하압허업흐읍 아임오케이〉(우란문화재단, 서울, 2021)이 있다.
9 ㅈㅈㅈㅈ제롬 엘리스
〈트랜스‘크립’티드〉는 ㅈㅈㅈㅈ제롬 엘리스가 2020년 한 낭독 행사에서 발표한 내용을 녹음 파일로 재생하고, 말을 더듬는 부분을 포함해 자신의 말소리를 메모장에 실시간으로 타이핑하는 온라인 공연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말을 더듬을 때 나타나는 소리의 불연속성을 줄임표나 공백 대신 낱글자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표기해 그것이 침묵과 다름을 드러내고, 문자의 시각적·청각적 특성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엘리스가 가진 말더듬은 음절을 반복하는 형태가 아니라 ‘가’를 발음할 때 ‘ㄱ’이 목구멍에 달라붙어 ‘ㅏ’와 만나지 못하는 형태로 성대 사이가 막히는 것이다. 그가 이비인후과에서 후두경으로 자기 성대를 관찰한 경험은 말을 더듬을 때, 즉 입을 벌리고 있지만 소리는 나지 않을 때, 그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명하게 보여 준다.
“내가 말할 때는 성대가 만나서 진동했다.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성대가 분리돼 있었다. 말을 더듬을 때는 성대가 그 중간에 있는 게 보였다. 성대는 진동하며 만나려고 ㅅㅅㅅ시도했고, 성대가 만나면 내가 말을 할 때였다. 유창하게 말하는 것과 전혀 말하지 않는 것 사이에 말더듬이 사는 것을 보았다.”*
엘리스가 유독 자주 더듬는 단어는 자기 이름이다. 말을 더듬는 것은 대화 상대에게 흔히 침묵이나 회피로 읽힌다. 전화 통화를 시작할 때 말이 막히면 첫마디를 하기도 전에 통화가 끊기고, 영상 통화에서 말이 막히면 화면이 정지되거나 인터넷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가 경찰이면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다. 질문에 침묵하는 듯 보이는 흑인 남성은 의심스럽거나 위협적인 존재로 오해 받는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그는 말을 하고 있다. 단지 매끄럽고 유창하게 말하는 세계가 예상하는 타이밍에 “소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이다.”** 작가는 종종 이것을 지하에서 굽이치다 땅 위로 올라오는, 보이지 않을 때도 쉼 없이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며,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자신의 선택이 배제된 이 비유창성을 “비평의 한 형태이자 신체화된 비평”***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맥락에서 〈트랜스‘크립’티드〉는 소리의 타이밍이 다르다는 이유로 유창성 체제가 강요하는 불이익에 관한 말하기이자 그것에 저항하는 말하기이며, 자본주의의 선형적 시간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순간을 드러내는 시적 퍼포먼스다. ㅈㅈㅈㅈ제롬 엘리스의 말하기는 시간·말·소리에 관한 관습 바깥에, 말과 침묵 사이에 산다.
음속 반란 연구 그룹. “소리와 힘에 관한 대화: ㅈㅈㅈㅈ제롬 엘리스.” 행진, 2021년 12월, https://bit.ly/3NxiGFk. 2023년 6월 21일 접속.
**
킴, 크리스틴 썬 외. “소리 읽기와 신체화된 언어.” 유튜브, 하우스 데어 쿤스트, 2022년 9월 5일, https://bit.ly/3qVs8ud. 2023년 6월 21일 접속.
***
쿠즈마, 마르타 외. “ㅈㅈㅈㅈ제롬 엘리스: 도망자 연설에 관하여.” 유튜브, 예일 대학교 예술 대학, 2020년 12월 12일, https://bit.ly/43YAsIv. 2023년 6월 21일 접속.
2020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20초
제작 의뢰
뉴욕 포에트리 프로젝트

미국 코네티컷주 그로턴 출생 / 미국 노퍽에서 활동
ㅈㅈㅈㅈ제롬 엘리스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이자 다양한 악기 연주자이며 작가다. 음악, 문학, 공연, 비디오, 사진을 매개로 흑인성, 언어 장애, 소리, 시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음악 이론과 민족음악학을 공부했고, 풀브라이트 연구 지원금으로 살바도르에서 삼바를 연구했다(2015). 예일 대학교에서 사운드 디자인을 강의했고, 링컨 센터, 시 프로젝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2023,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 등에서 공연했다. 2021년 ‘더 클리어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데뷔 앨범과 책으로 미국 시 협회가 수여하는 안나 라비노위츠상(2022)을 받았다.
10 내트 파이퍼
비디오 작품 〈틈새를 향한 신뢰의 도약〉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익힌 어머니의 언어 포르투갈어에도 익숙한 내트 파이퍼가 두 언어의 틈을 좁히려는 시도이자 발화 연습이다. 파이퍼는 글자로 쓰이지는 않지만 청각적 운율을 만드는 요소이자 때때로 의미 차이를 만드는 알파벳 모음의 장단으로 모국어를 떠오르지 않을 때의 감정을 묘사한다.
작가는 자신을 “알파벳 예술가”로 소개하며 “나는 언어를 거름망 삼고, 거기에 내 몸을 밀어 넣는다.”*라고 말한다.
시간을 주요 구성 요소로 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그들의 어머니가 정식으로 가르쳐준 적 없는) 모국어를 잊어버린 채 언어와 신체, 과거와 미래, 의미와 느낌, 영어와 포르투갈어 사이의 틈새에 빠지는 느낌을 경험한다.
“주목 받는 아티스트 2021: 시카고의 차세대 이미지 제작자.” 뉴시티 아트, 2021년 3월, https://bit.ly/3Enxnql. 2023년 8월 21일 접속.
2019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분 50초
협업
앙 정(촬영과 조명)

미국 록퍼드 출생 / 미국 브루클린에서 활동
내트 파이퍼는 퀴어 출판물의 역사를 연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폰트, 착용할 수 있는 작품, 비디오, 공연을 선보인다. 시카고의 시 재단, 토론토의 쿠퍼 콜, 브루클린의 패전트에서 공연했고,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 필라델피아의 복스 포풀리, 뉴욕의 프린티드 매터에서 전시했다. 출판사 드로우 다운 북스, 잉가 북스, 마션 프레스와 젠더페일, 퀴어.아카이브.워크에서 인쇄물을 펴냈고, 워커 아트 센터 온라인 플랫폼 등에 기고했다. 예일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1 럭키 드래건스
〈비전리포트〉는 소리를 시각 보고서 형태로 녹취하는 방법을 보여 준다. 컴퓨터로 생성된 패턴과 더불어 손으로 재빨리 그래픽 표기를 스케치해 듣는 행위와 보는 행위를 연결 짓는 것이다.
휴대용 펜으로 검은색 배경을 가로지르며 흰색 선을 그리면, 짧은 합성 사운드가 분출되는 동시에 선이 움직인다. 선은 곡선이나 각도를 띤 채 구부러지고 흔들리며, 변조되는 사운드에 맞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이처럼 자유롭고 모호한 모양은 문자나 숫자를 닮은 모습을 띨 수도 있고, 소리의 원인이나 결과로 직관될 수도 있다. 이렇게 그려진 각각의 형상은 그려지는 동시에 분석된다. 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확산되는, 미세한 분기선으로 표시되는 잠재적 미래의 경로가 각 도형이 지닌 고유의 모호함을 통해 인식 가능한 모든 형태의 군집을 그려 낸다. 펜을 들어 올리면 선이 퍼지고, 구부러지고, 겹쳐지는 예측이 계속되며 새로운 경로가 제안된다.
직접적인 감각과 컴퓨터라는 보조 감각의 상호 작용을 위한 이 기술에서는 번역과 해석의 구분이 모호해지는데, 이는 인간이 관찰하는 바와 알고리즘의 관찰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진다. 인식, 모델링, 예측이라는 활동이 음악적 형식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2017/2023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9분 34초

1999년 결성 /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
럭키 드래건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사라 라라와 루크 피쉬벡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이뤄진다. 이들은 참여와 항의의 형태를 연구하며 공연, 출판, 기록, 공공 예술로 이미 존재하는 생태계를 향한 이해를 더 좋아지게 하려 애쓴다. 럭키 드래건스는 폭 넓은 맥락에서 협업 작업을 선보였고, 지금까지 REDCAT, LACMA, MOCA, 해머 미술관 등 로스앤젤레스의 미술 기관과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센터, 미네아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 뉴욕의 더 키친,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 도큐멘타 14, 휘트니 미술관(2008년 휘트니 비엔날레 참여),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허쉬혼 박물관과 조각 정원 등에서 전시한 바 있다. “럭키 드래건스”라는 이름은 1950년대 중반 수소폭탄 실험의 낙진에 휩쓸린 어선에서 따온 것으로, 이 사건은 국제적인 항의를 초래하며 전 세계적인 반핵 운동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12 헤르디마스 앙가라
“RASUK는 영혼 빙의의 본질을 구현하øㅕ 그 영향을 발휘한다.
ㄴr는 지난 2년간 ㄹΓ○l브 줌 데스크톱 퍼포먼스 영역을 깊○l 파고들었고, ○l를 통해 디지털 언øł를 조작하고 창조해냈⊂ト. ○l 과정에서 표준적 비즈니스 플랫폼/0H플리케○l션(구글 문서 도구, 구글 스프레드んı트 등)의 구조를 비틀ヱ 왜곡하øㅕ 익숙함의 연쇄를 풀어내고 각 んı스템에 내재한 선입견을 깨트렸⊂ト. ○l ㅁı묘한 영역에서 종교적 황홀경○l 울려 퍼ズl고 공명한⊂ト면 øł떻게 될까? ○l러한 육체적 빙의ㄱr 사용자 인터페○l스오ŀ 같은 상징적 개념øłl 대한 우己l의 인식을 변화んı킨⊂ト면 øł떨까? 우己l는 ○l 평범해 보○l는 기계를 탐색하면서 øł떻게 진정한 주체성을 ㅍr악할 수 있을까?”
〈라숙〉은 전시 기간 동안 줌을 활용해 전시장으로 세 차례 전송되는 실시간 공연이다. ‘데스크톱 퍼포먼스’라 불리는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전통 제의를 모티프로 하며, 약 30분간의 공연 동안 익숙한 데스크톱을 황홀한 물체로 바꾼다.
헤르디마스 앙가라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나 소프트웨어를 통제된 공간이자 표준화된 질서로 간주하고 구글, 지메일, 유튜브 등 익숙한 디지털 환경을 자신의 데스크톱에 재현한 다음 이를 해킹하거나 작동 오류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현대인이 무비판으로 수용하는 디지털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킨다.
공연 동안 데스크톱 화면에 보이는 모든 요소는 영적 존재로 재구성된다. 맥 바탕 화면 아이콘들은 강력한 정령에게 몸을 맡긴 무용수처럼 배경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유튜브 뒤에 숨어 있던 디지털 악령은 제 정체를 드러내고 활개 친다. 작가는 이처럼 디지털 환경을 장악하고 ‘디지털 정령’을 불러내 사용자에게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폭로하듯 시각화하며 자본과 국가가 장악한 컴퓨터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하고, ‘능동적인 사용자 경험’이라는 생각의 변화를 유도한다.
2022–진행 중
실시간 스트리밍 공연, 데스크톱, 4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약 30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생 /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활동
헤르디마스 앙가라는 기술의 행동 유도성을 활용해 디지털이나 실제 공간에서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제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실시간 공연을 펼치며 종교적 무아지경과 의식 변화의 경험을 모방한다. 앙가라는 이런 행위로 기존 플랫폼이 주는 익숙함을 깨고 선입견을 뛰어넘어 각각의 플랫폼에 주체성을 부여한다. 예일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3 에즈키엘 아키노
“이 작품은 컴퓨터 언어에 기반하지만, 창작 과정은 손으로 그린 스케치나 카펫 직조에 가깝다. 아이디어 구현에 복잡한 수작업이 동반되고, 그 과정이 보이지 않는 소리를 다룰 수 있는 물질로 바꾸며 작품에 개성을 불어넣는다.”
기호로 가득한 악보에서 그래픽적 특성을 포착하고 이를 시각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에제키엘 아키노가 오래 주목해 온 주제다. 〈C조에서 오르내림, Op.1 No.1〉에서 에즈키엘은 음악 패턴을 시각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마치 컴퓨터가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즉흥 연주를 하듯 끊임없이 곡을 생성하는 제너레이터를 만들고, 그 소리를 악보에 흑백 피아노 건반이 포개지는 형태로 표현하며 넘실대는 시청각 지형으로 청중을 초대한다.
불확실성과 우연성에 열린 이 작품은 작가가 작곡과 연주에 필요한 규칙을 만들지만 그것을 완성하지는 않는다. 음악은 그 씨앗에 해당하는 악절의 ‘모양’을 무작위로 쪼개고 늘리고 때로 요소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변주되면서 C조 안에서 조금씩 다른 선율을 이어 가고, 곡을 단순화한 악보라 할 수 있는 그래픽은 알고리즘에 따라 유동적인 퍼포먼스를 구현한다. 음악이 아니라 그것을 생성하는 시스템에 주목한 브라이언 이노의 선구적인 작품이나 순서가 정해진 53개의 짧은 악보 모듈과 간단한 규칙으로 연주자에 따라 곡이 변하도록 만든 테리 라일리의 「C조에서」가 겹쳐지는 지점이다.
이 작품은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반복 없이 15,000시간 동안 지속된다. 이때 반복 없음이란 교차로를 오가는 사람과 자동차의 흐름과 같은 비반복이다. 일정 요소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교차로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듯, 이 작품 또한 테마를 반복하지만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과 타이밍, 방식은 매번 다르다.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며, 사람들은 작품이 공개된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버전의 시청각 이벤트를 만난다.
2020년
웹 사이트, 사운드, 15,000시간

필리핀 케손시티 출생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에즈키엘 아키노는 그래픽 디자이너 겸 프런트 엔드 개발자이자 크리에이티브 코더다. 디자인과 코딩, 그 사이의 모든 요소를 창작 도구로 활용한다. 일상과 사물, 기억과 우연에서 발견한 패턴을 스크린 중심의 디지털 매체로 유쾌하게 구성·재구성해 기능적이고 견고하며 우아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필리핀 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고, 위트레흐트 예술 학교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4 요코야마 유이치
〈광장〉은 요코야마 유이치의 만화 『광장』(2019)에서 선별한 14쪽으로 구성돼 있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움직이는 무대에서 전개되는 화려한 공연과 흥분한 관중의 함성이 뒤섞인 웅장하고 광적인 시공간을 다룬다. ‘네오 망가’로 불리는 요코야마의 작품 세계를 가장 타협 없이, 시끄럽게 보여 주는 만화로, 대사 없이 오직 행진, 춤, 환호, 폭발 등을 묘사한 밀도 높은 그림과 모든 컷에 등장하는 “도도도도(ドドドド)”, “고로고로(ゴロゴロ)”, “파카파카(パカパカ)” 같은 의성어로 시각적 소음을 일으키며 보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작가가 서사 대신 만화에 담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해석할 수 있고 시간이 흘러도 레트로가 되지 않는 보편성이다. 그는 시대, 국가, 계절, 공간, 등장인물의 인종이나 성별 등 특정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공들여 배제하며, 모든 해석을 독자에게 맡긴 채 한 장면 한 장면의 시각적 재미에 집중한다. 외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할 수 없는 대사보다 의성어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코야마의 만화에서는 시간이 균일하게 흐른다. 그는 의성어로 컷의 크기와 밀도를 조절해 한 컷에 2초라는 같은 시간을 담고, 어떤 풍경이나 공간, 사물을 연이어 그리는 방식으로 정지된 이미지에 움직임을 부여하며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광장〉은 대략 80초의 시간을 담고 있고, 225쪽에 걸쳐 행진만 이어질 뿐 끝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광장』은 24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시각적으로 연결된 듯 보이지만 컷들 사이에 어떤 의미적 연결 고리도 없는 요코야마의 작품은 보는 이가 개입하는 만큼 재미도 커지는 게임과 같다. 누군가는 모든 컷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를 느끼고 누군가는 금방 읽기를 포기하지만, 작가는 “시각 예술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할 뿐 손쉬운 재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럴 법한 의미를 부여하며 재미를 찾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2019년
천에 디지털 프린트, 283×2,440cm

일본 미야자키현 출생 /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활동
요코야마 유이치는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유화를 공부하고 순수 미술을 선보이다가 2000년부터 “시간을 그릴 수 있는” 매체인 만화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속도감 넘치는 선과 의성어 등을 소재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그의 작풍은 ‘네오망가’로 불린다. 만화 작품집으로 『네오만엽』(2023) 『플라자』(2019) 『아이슬란드』(2016) 『세계 지도 사이』(2013) 『룸』(2013) 『베이비 붐』(2009) 『아웃도어』(2009) 『정원』(2007) 『트래블』(2006) 『뉴 토목』(2004) 등이 있고, 화집으로 『패션과 밀실』(2015) 『베이비 붐 파이널』(2010) 『요코야마 유이치 컬러 화집』(2006) 등을 펴냈다. 저작 대부분이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번역 출판됐다. 대규모 첫 개인전 《요코야마 유이치의 네오망가 결산: 나는 시간을 그린다》(가와사키 시립 미술관, 가나가와, 2010) 이후 일본 안팍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고, 매년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해 왔다. 도쿄의 모리 미술관,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상하이의 룽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15 에릭 티머시 칼슨
〈ETC×본 이베어: 10년간의 예술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은 에릭 티머시 칼슨이 본 이베어 밴드의 예술 감독으로 활동한 지난 10년간의 작품, 디자인, 이미지, 자료를 모아 놓은 컬렉션이다.
칼슨은 2013년 위스콘신주 오클레어 외곽에 자리한 녹음 스튜디오 에이프릴 베이스를 방문해 다음 정규 앨범 『22, a Million』의 아트 워크에 관해 논의하면서 본 이베어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3년 동안 본 이베어와 칼슨은 앨범의 시각 아이덴티티에 관한 모든 부분에서 긴밀하게 작업을 이어 갔다. 칼슨은 앨범이 발매된 2016년 가을부터 이 밴드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예술 감독으로서 칼슨은 두 장의 정규 앨범 『22, a Million』과 『i,i』에 관한 작품과 디자인, 이에 따른 마케팅 캠페인, 가사, 비디오, 앞서 발매된 세 앨범의 10주년 기념 리디자인, 2020년에 발매된 두 장의 싱글, 수백 개에 달하는 티셔츠 디자인, 수천 장의 포스터와 광고 자료 디자인, 블로그, 웹 사이트, 설치, 라이브 공연 비디오, 정치 운동 캠페인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그 작업들은 대부분 공개돼 있지만, 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설치 작품은 그가 밀도 높은 작업을 진행하는 데 적용한 체계적인 과정을 보여 주고 가시화되지 않던 독창적인 자산을 강조하며, 방대한 작업 결과물을 처음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13–2023년
종이에 잉크젯·레이저젯 프린트, 종이에 실크 스크린, 종이에 오프셋 인쇄, 종이에 펜과 연필, 콜라주, 비디오(컬러, 무음), 설치 130×2,522×200cm

미국 월넛 크리크 출생 / 미국 브루클린에서 활동
에릭 티모시 칼슨은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다학제 예술가다. 미니애폴리스 예술 디자인 대학교에 공부했고, 소재를 복잡하게 중첩하고 기호학을 기민하게 활용하는 고유한 방식으로 콜라주, 회화, 출판물, 설치, 영상 작업을 활발하게 선보인다. 2008년부터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본 이베어, 보이즈 노이즈, 37d03d, 퍼포먼스 스페이스 122 등 주로 예술가, 음악가, 문화 기관, 단체와 협업해 왔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워커 아트 센터, 프린티드 매터 등이 주최한 문화 행사에 토론자나 연사로도 참여했다. 뉴욕의 파이어니어 웍스, 프린티드 매터, 피셔 패리쉬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고, 공동 작업으로 매사추세츠 현대 미술관, 샌프란시스코의 텔레매틱 미디어 아트 갤러리, 맨해튼 브리지 아치길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다. 음반 디자인으로 2017년과 2019년에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16 요쎄 필
〈ㄴㅐ새ㅇ가ㄱ으ㄹ마ㅅ보ㄹㅅㅜ가어ㅂㅅ어〉는 요쎄 필의 작업을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를 엮어 새로운 장소 특정적 설치로 풀어낸다. 이 작품은 건물의 건축적 어휘를 활용해 언어가 인체의 소화와 비슷한 순환 구조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용해되는지를 탐구한다. 여기서는 벽이 소통하는 인공물로 변해 자신의 물성에 상징과 사유를 새기고 부조의 형태로 흩어진 문장을 형성한다. 마치 혀와 이가 말을 몸 밖으로, 세상으로 내보내기 전에 조각하는 것처럼 여기서는 메시지가 옮겨지는 동시에 왜곡된다.
건물은 말을 넘어선 언어의 생산을 서술하는 공간의 시가 되지만, 이는 외려 독자의 마음속에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설치 작업은 마치 관광이나 고고학적 경험을 연상케 하는 순수한 산책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익숙한 의사소통 패턴을 가시화하면서도 낯설게 만든다. 관객은 알 수 없는 언어의 잔재처럼 보이는 유물들 사이를 다니면서 기존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공명의 길을 형성한다. 전시장에 놓인 유적 사이를 걷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곤 하는 문화 코드와 신호가 왜곡된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인식을 형성하는지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
2023년
석고 성형, 콘크리트 블록, 시멘트, 설치 약 180×1,120×960cm
작품 제공
작가, 아넛 헬링크 갤러리
제작 후원
네덜란드 크리에이티브 인더스트리즈 펀드


벨기에 신트니클라스 출생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요쎄 필은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공부하고, 라익스아카데미에서 레지던시를 마쳤다. 그의 작업은 언어 생산과 수행을 탐구하며 인간과 다른 인간을 묶는 근본적인 연결을 밝혀낸다. 그는 언어를 가변적인 재료로 활용하며, 이를 통해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 세상을 읽는 방법을 고찰한다. 필에게 언어란 그저 단어의 집합이 아니라 기호, 소리, 움직임과 함께 엮인 생각과 감정의 태피스트리이며, 이곳에서 기호와 아이디어가 어떻게 신체와 현실을 통해 흐르는지 탐구한다. 그는 언어와 사유가 생명력을 얻어 살아 움직이고 길을 잃기도 하는 공간 환경에서 이와 함께 어우러지는 드로잉, 조각, 영상을 제작해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그물망을 풀어내고자 한다.
17 이한범
〈회색 연구〉는 ‘회색’을 프로토콜 삼아 활자 영역과 소리 영역을 교차시키는 시도다. 타이포그래피가 검은색(글자)과 흰색(바탕) 사이, 즉 회색 영역을 조정해 생산되는 효과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방법이라면, 소리 또한 진동과 진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사이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현상이며, 우리가 소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관계의 끊임없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현장 녹음은 소리의 회색 영역을 포착하고 재생산하는 방법이 된다. 이를 비틀어 생각하면 우리가 기술이라고 일컫는 역량과 무언가를 무언가로서 인식하는 의식 과정에는 모두 회색 영역이 관여되어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고, 〈회색 연구〉는 회색 영역을 다루는 다양한 기술적 실천을 고찰하며 이 가정을 확인해 보려는 탐구다.
〈회색 연구〉의 결과는 전시에서 글쓰기와 소리 설치로 구현되고 읽기와 듣기로 공유된다. 글은 타이포그래피에서 회색의 기능과 회색 영역의 사건으로서 소리를 탐색하는 방법론인 현장 녹음에 관한 논의를 축으로, 회색 영역을 움직임 그 자체로서 탐색한다. 소리는 특정 대상을 주목하거나 내세우는 대신 마치 풍경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의 양상을 다룬다. 즉, 요소들이 공간에서 움직이고 변형되는 풍경을 청취하고 여기서 산출되는 감각과 이미지로 회색 인식론을 제안한다. 글과 소리 설치는 전시장 안에 숨겨진 공간이나 복도, 계단과 같은 전이 공간 곳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견될 것이다.
[ 리서치랩—회색연구 ] ↗
2023년
사운드 설치(반복 재생), 종이에 오프셋 인쇄, 29.7×42cm (3)

한국 부산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이한범은 미술 비평가 겸 편집자다. 나선프레스와 나선도서관을 설립하여 운영한다.
18 슬라브와 타타르
열 개의 카펫으로 이뤄진 연작 〈사랑의 편지〉는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20세기 문자 개혁을 중심으로 국가가 말에 특정 문자를 강요하는 ‘알파벳 정치’를 다루며, 모국어를 외국 문자로 읽고 써야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이를 수용하기 위한 언어 곡예를 풍자한다.
슬라브와 타타르는 러시아 시인이자 극작가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작품 『주술사도, 신도, 신의 천사도 농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НИ ЗНАХАРЬ НИ/БОГ НИССЛУГИ БОГА HAM НЕ ПОДМОГА)』(1923)에서 귀족, 성직자, 종교 등을 풍자한 그림을 바탕으로 캐리커처를 그리고, 이를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카펫 형태로 제작했다. 열 개의 카펫을 관통하는 주제는 문자와 소리의 불화, 혀, 대중 등 문자 개혁의 희생양과 근대화에 따른 트라우마다. 전시에서는 그중 다섯 작품을 소개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볼셰비키는 러시아 제국 시절 이슬람교도와 튀르크어를 쓰던 민족이 사용하던 아랍 문자를 연방 내 130여 개 언어의 표기 통일, 사회주의 확산 등을 이유로 라틴 문자로 교체했고, 1924년 레닌 사후에 집권한 스탈린은 소비에트 단일 국가를 강조하며 라틴 문자를 다시 키릴 문자로 바꾸는 문자 개혁을 했다.
〈사랑의 편지 1번〉은 키릴 문자에 없던 음소나 소리에 키릴 문자(자소)를 할당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사랑의 편지 2번〉에서 혀는 철창에 갇혀 몸부림치며 음소(소리)에 자소(문자)을 맞추려는 제도 권력에 저항한다. 〈사랑의 편지 3번〉에는 여러 언어를 수용하기 위해 ‘저글링’ 하며 곡예를 펼치는 네 갈래의 혀가 등장한다.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사랑의 편지 9번〉은 1939년에 소수 민족어의 표기법을 라틴 문자에서 키릴 문자로 다시 바꾸면서 언어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의 키릴 문자를 쓰도록 해 소수 민족의 소통을 막은 소비에트의 분할 통치를 풍자한다. 카펫 속 인물은 다섯 개의 다른 글자로 쓰인 같은 소리 “[ʤ]”를 외치며 괴로워한다.
한편,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8년에 근대화를 목표로 튀르키예어 표기에 쓰던 아랍 문자 대신 라틴 문자를 도입한다. 그러나 여러 나라의 문자 개혁 역사에서 이 정교한 작업을 언어학자가 맡는 일은 드물었다. 정치인, 민족주의자, 아마추어 언어학자가 언어라는 살아 있는 체계를 바꿨다. 〈사랑의 편지 8번〉에는 히잡을 쓴 농민 여성이 “KURUMUMSU(쿠루뭄수)”에 치여 절단된 장면이 나온다. 이는 문자 개혁을 주관한 튀르크 국립 국어원(Türk Dil Kurumu)을 풍자한 것으로 ‘쿠룸(kurum)’은 튀르키예어로 ‘기관’이라는 뜻이고 ‘쿠루뭄수’는 ‘기관 같은’이라는 뜻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은 제도에 따른 언어 근대화와 ‘개혁’의 또 다른 희생자다.
2013–2014년
모사, 약 250×250cm (5)

2006년 결성 /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
슬라브와 타타르는 유라시아로 알려진 베를린 장벽의 동쪽 영역과 만리장성의 서쪽을 중심으로 논쟁과 친목을 다져 온 당파적 집단이다. 이들의 작업은 전시와 책, ‘렉처 퍼포먼스’라는 세 가지 활동을 기반으로 한다. 슬라브와 타타르는 자신들이 속한 지역의 젊은 전문가를 위한 레지던시와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한편, 베를린 모아비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슬라브식 아페리티보 바와 프로젝트 공간을 겸한 ‘피클 바’를 열었다. 온라인 숍 ‘메르크츠바우(MERCZbau)’도 운영한다.
19 조혜진
〈이주하는 서체〉는 조혜진이 2018년, 2020년, 2022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에 사는 이주민의 손 글씨를 수집해 만든 폰트다. 이 작품은 이주민 참여자가 한국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장 많이 듣는 말, 좋아하는 문장, 가족 이름 등을 묻는 설문지를 작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작가는 회수한 설문지에서 글자를 골라 외곽선을 따고 폰트를 만든 다음, 그것을 프로젝트 웹 사이트에서 무료로 배포한다.
13개국에서 온 54명의 이주민이 채운 〈이주하는 서체〉는 숫자와 기호를 포함한 620자로 구성돼 있다. 작가는 글자체를 일종의 위계가 작동하는 체계로 보고, 한글 바탕체 사이에 이주민들의 글자체를 섞는 방식으로 그 체계에 균열 내기를 시도한다.
“한글 11,172자 가운데 일상에서 쓰는 것은 2,350자 정도이고, 그중 특히 많이 쓰는 것은 210자 정도로 압축된다. 〈이주하는 서체〉에는 참여자의 모국어 발음을 따라 포함된, 210자 바깥에 있는 글자도 있다. 이는 한국인에게 의미를 갖는 한글 단어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며, 실용성에 밀려 한글 폰트 개발에서는 자주 배제하는 영역이다. 이런 관계 구조는 일상 곳곳에 스민 이민자와 한국인의 구별 짓기를 은유한다.”
〈이주하는 서체〉와 함께 설치된 〈다섯 개의 바다〉는 강릉에 사는 이주민들과의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단어인 ‘바다’에 관한 인상을 다룬다. 조혜진은 다섯 사람이 쓴 ‘바다’라는 글씨를 확대해 그 외곽선 일부를 흙으로 둑처럼 쌓아 올렸다. 설문지에 쓰인 글씨는 납작하지만 손의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체화한 것이자 이주민 각자의 경험을 담고 있다. 작가는 그 일부를 입체 조형물로 제작해 평면의 글씨 너머에 존재하는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떠올리고 상상해 보기를 권한다.
2023년
한글 글자꼴 620자,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관련 자료
다섯 개의 바다
2022년
라텍스 타일, 47×47cm (23)

한국 서울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조혜진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조각가다. 사회 구성원의 행동 양식과 이를 반영하는 형태로서 사물에 주목한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사물이 생산, 소비되는 운동성과 조각하기를 상호 참조적 관계로 설정하고, 조각 매체에 관한 탐구를 작업의 동력으로 삼는다. 개인전 《꼴, 모양, 자리.》(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1)에서 이주민의 손 글씨를 폰트로 만들어 배포하고, 《옆에서 본 모양: 참조의 기술》(d/p, 서울, 2019)에서는 실용신안 문서를 조각의 영역으로 가져와 해석했다.
20 김뉘연·전용완
『제3작품집』(2023)은 시각 예술가이자 저술가 테레사 학경 차(1951–1982)의 『딕테(DICTEE)』(1982)를 이어 쓰고, 다시 쓰고, 다르게 쓴다. 이는 하나의 정체성에 고정되지 않는 실험적인 책 『딕테』를 과정으로서 열린 책으로 바라본 결과로, 새롭게 쓰이는 과정을 통해 『제3작품집』 역시 과정으로서 열린 책이 되어 간다. 과정은 이어서 쓰이는 필연성을 동반하고 담보하며, 안팎을 확장해 나가는 움직임이다. ‘DICTEE’는 ‘받아쓰기’를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딕테』의 ‘말하는 여자’는 사라져 잊힌 음성들을 듣고 받아쓴다. 들리는 소리를 말하고 쓰는 행위는 여러 사람을 통해 반복되고 중첩되고 확산될 수 있다.
『제3작품집』은 『딕테』의 아홉 장(章)을 제목 없는 9막으로 반영한다. 책의 시작과 끝에 여닫는 글이 자리하며, 이 글들은 서로를 반영하며 순환한다. 각 막은 테레사 학경 차의 여러 예술 작품에서 비롯된 시로 시작한다. 뒤이어 다양한 형식의 글이 몇몇 도판과 함께 흐른다.
『제3작품집』에서 이어 쓰이고, 다시 쓰이고, 다르게 쓰인 다성적인 잉여의 목소리들은 『딕테』라는 시공간 안팎에 존재하는 ‘제3의 부류’를 향한다. 한 사회의 소수를 상징하는 제3의 부류를 확장하는 제3의 공간으로서의 ‘쓰기’로 펼쳐진 글들은 해체되고, 분리되고, 인용되고, 반복되고, 중첩되고, 연쇄되고, 혼종되며 불완전하고 비선형적이고 다원적인 궤도를 그려 나간다. 그 모든 과정의 근원에 자리한 것은 다시 언어이다.
2023년
종이에 오프셋 인쇄, 사철, 하드커버, 17.4×16cm, 216쪽

한국 서울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김뉘연·전용완은 언어를 재료로 작업한다. 〈문학적으로 걷기〉(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6 ), 〈수사학—장식과 여담〉(아르코미술관, 서울, 2017), 〈마침〉(아트선재센터, 서울, 2019), 《방》(온수공간, 서울, 2020) 등으로 문서를 발표했다.
21 머티 인도 고전 총서
머티 인도 고전 총서는 인도 고전 문헌에 영어 번역을 더해 2개 국어로 출판하는 도서 시리즈다.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의 의뢰로 피오나 로스, 라트나 라마나탄, 존 허드슨, 헨릭 쿠벨, 타이터스 네메스, 굴리엘모 로시가 협업해 디자인했다.
이 프로젝트는 『베다』를 포함해 정교한 구전 전통을 반영하는 고대 인도의 문학, 역사, 종교 문헌을 다양한 인도어와 그에 따른 표기 체계로 선보인다. 허드슨과 로스는 오래된 문헌들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방대한 아카이브 연구를 거쳐 ‘머티 글자체’를 개발했다. 책에서 인도어에는 머티 글자체인 〈머티 벵골〉, 〈머티 힌디〉, 〈머티 칸나다〉, 〈머티 구르무키〉, 〈머티 산스크리트〉, 〈머티 텔루구〉를, 페르시아어에는 네메스가 디자인한 글자체 〈나심〉을, 영어에는 쿠벨이 디자인한 〈앤트워프〉를 적용했다.
라트나 라마나탄과 굴리엘모 로시는 인도어 필사본과 초기 인쇄물 연구를 바탕으로 표지와 본문을 디자인하고 조판했다. 본문 디자인은 독립된 선율을 가지는 둘 이상의 성부로 이뤄진 다성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대칭 구조로 짜고, 인도 문자와 라틴 문자의 서로 다른 특징과 시나 산문 같은 글 형식에 따라 여백, 단락 폭, 글줄 사이, 글자 크기 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두 언어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독해의 동시성을 찾고, 상호 텍스트성을 부각하는 과정이었다.
로스는 《타이포그래픽스 2016》* 온라인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틴 문자로 작성하지 않은(non-Latin) 글이 라틴 문자로 쓴 글과 질과 선택의 면에서 동등해져서 ‘라틴어로 쓰이지 않은(non-Latin)’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사라졌으면 합니다! 예컨데 휴대폰에서 고유한 문자를 표시할 수 있게 되어서 소수 민족 공동체들이 제대로 읽힐 수 있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라틴 문자로 자신의 메시지를 음역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좋겠습니다.”
라마나탄은 쿠퍼 유니온 온라인 강연**에서 머티 인도 고전 총서를 예로 들며 타이포그래피가 구술 문화를 문자 문화로 번역할 때 고려할 점을 이렇게 말한다. “말에 담긴 영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단어가 정확하게 반복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리듬, 운율, 음색이 재현돼야 합니다. 이는 단어의 소리가 단어 자체만큼이나 많은 것을 뜻한다는 믿음에 기반한 생각입니다.”
머티 인도 고전 총서는 디자인 연구, 협업, 공예 영역의 성취뿐 아니라, 다양한 인도 문자의 특성을 반영한 글자체 개발로 인도어와 영어의 다른 목소리를 존중하고, 다양성과 접근성을 북디자인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귀한 사례다.
로스, 피오나. “타이포그래픽스 2016: 하나의 활자체를 고른다면.” 유튜브, 타이포그래픽스, 2016년 10월 29일, https://bit.ly/47XEXoX. 2023년 8월 5일 접속.
**
라마나탄, 라트나. “간문화(Intercultural)와 탈식민: 타이포그래피의 실천을 위한 구조 탐색.” 유튜브, 쿠퍼 유니온, 2021년 12월 6일, https://bit.ly/3Z0X6hz. 2023년 8월 5일 접속.
2010년–진행 중
종이에 오프셋 인쇄, 사철, 하드커버, 21×13cm (10)
발행처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
창간인
로한 머티
머티 글자체
존 허드슨, 피오나 로스
〈앤트워프〉 디자이너
헨릭 쿠벨
〈나심〉 디자이너
타이터스 네메스
북 디자인, 조판
라트나 라마나탄, 굴리엘모 로시

2010년 출범 /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발행
피오나 로스 영국 런던 출생 / 영국 글로스터셔에서 활동
남아시아 활자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로, 언어학에 관한 배경 지식과 인도 고고학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디자이너이자 글 쓰는 작가이고 강연자이며, 레딩 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교수로 일한다. 어도비,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 등과 함께 작업했다. 2018–2021년에 앨리스 사보이, 헬레나 레카와 함께 20세기에 등장한 유명 활자체 디자인 과정에서 여성의 업적을 조명하는 연구 프로젝트 ‘활자 속 여성’(www.women-in-type.com)을 이끌었다.
라트나 라마나탄 인도 첸나이 출생 / 영국 런던에서 활동
디자이너이자 연구자다. 미국, 영국, 인도 아대륙 사이에서 진행되는 연구 중심의 다문화, 다중 플랫폼 그래픽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전문성으로 널리 알려졌다. 현재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존 허드슨 영국 브리스틀 출생 / 캐나다 가브리올라섬에서 활동
다양한 문자 체계를 위한 활자체를 디자인하고 폰트를 제작한다. 작은 회사지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여러 폰트를 제작한 티로 타입웍스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방송과 웹 폰트 표준에 기여한 공로로 2022년에 에미상을 받았다.
헨릭 쿠벨 덴마크 코펜하겐 출생 / 영국 런던에서 활동
활자 디자이너이자 타입 파운드리 ‘A2타입’의 공동 설립자다. A2의 폰트 라이브러리는 지난 20년 동안 제작된 100개 이상의 고유한 활자체(1,000개 이상의 폰트)를 아우른다. 2010년에 A2타입을 설립한 이래 업계를 이끄는 디자인 회사나 글로벌 고객과 함께 일하며 전 세계 브랜드, 신문, 서적, 잡지, 저널을 위한 맞춤형 활자체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타이터스 네메스 오스트리아 뫼들링 출생 /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이자 역사가다. 아랍어와 다국어 활자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기계 시대의 아랍어 활자 제작』(Brill, 2017)을 쓰고 『아랍어 타이포그래피: 역사와 실천』(니글리, 2023)을 편집하는 등 저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22 티슈오피스
주식회사 티슈오피스는 디지털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서비스를 개발할 때 언제나 가설을 세우고 일정한 실험을 거쳐 가설을 검증한 다음 그것을 발전시키거나 폐기한다. 이때 실험이란 대상의 목소리를 듣는 작업이다. 예를 들면 서비스 사용자를 모집해 사용성에 관해 질문하는 사용자 인터뷰나 출시되지 않은 서비스의 최소 기능만을 구현해 목표 고객의 수요를 측정하는 ‘프로토타이핑’ 기법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설정한 가설이 참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는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로 판단한다. 여기서 데이터는 꼭 숫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그 성격에 따라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으로 나뉜다. 정량적 데이터는 클릭률, 체류 시간, 전환율 같은 지표적 숫자다. 정성적 데이터는 인터뷰에 참여한 면담자의 반응, 즉 질문에 답하는 음성이나 글은 물론이고 웃음, 침묵 같은 비언어적 표현도 포함한다. 두 데이터 모두 그 자체로 객관적 사실은 아니며 맥락에 따라 수집, 판단된다.
채용 면접은 이러한 데이터 설정이 극대화되는 상황 중 하나다. 면접관은 원하는 인재를 찾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정하고, 지원자가 그 조건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질문을 이어가며, 지원자의 답변을 각 기준에 따라 검토한 후 합격 여부를 정한다.
티슈오피스는 전시에서 〈2023년 (주)티슈오피스 디자이너 특별 채용 면접〉이라는 제목으로 채용 면접 상황을 재연한다. 면접관은 목소리로, 지원자는 문자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이 작품은 관객 참여로 완성되며, 서로의 뚜렷한 목적과 필요에 따라 펼쳐지는 일종의 즉흥극 형식을 띤다.
2023년
인터랙티브 설치,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웹 기반의 반응형 스크린, 웹 카메라, 노트북

2019년 결성 / 한국 서울에서 활동
티슈오피스는 2019년 봄 서울에서 출범한 스타트업이다. 건축, 제품, 그래픽 등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조직원이 모인 다학제 그룹으로 ‘선명한, 완결된, 안전한’ 것과는 거리를 두며 현상을 바라본다. 주로 게임을 만들며, 화성 곳곳을 탐사하는 문화 예술 메타버스 ‘쿤트라(KUNTRA)’(2021)를 발표하고 업데이트 중이다. 자동 번역기는 ‘TISSUE OFFICE’를 종종 ‘조직 사무소’로 번역한다.
23 크리스 로
크리스 로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작품에서 소리의 개념을 탐구해 왔다. 하지만 작가가 다루는 소리는 귀로 듣거나 경험하는 소리가 아니며, 소리를 시각화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그는 시각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 어떻게 소리를 창조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귀를 통하지 않고 경험할 수 있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지를 탐구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이런 식의 소리를 수집해 설치한 것으로, 그중 일부를 리듬, 반복, 움직임, 공간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외에 소리에서 빌린 조각이나 프레임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 작품 중 일부는 2021년 d/p에서 열린 전시 《우리같은 도둑》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 작품의 콘셉트는 “쉿” 하는 소리 혹은 침묵이다. 몸과 눈으로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일련의 소리.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소리 없는 소리의 연쇄다.
2021/2023년
혼합 매체, 폴리카보네이트, 알루미늄, 합판, 혼합 종이, 아크릴, 흑연, 플라스틱, 설치 약 230×330×157cm

미국 시애틀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크리스 로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애니메이션, 인쇄, 페인팅,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최근에는 소리, 공간, 분위기, 에너지, 웃음, 영혼, 도둑 등 대체로 시각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들을 탐구해 왔다. 시각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던 개념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건축과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다양한 배경을 쌓았고, 이는 그가 2차원의 표면과 3차원의 공간을 해석하는 방식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UC 버클리,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전 세계에서 작품을 전시해 왔고, 여러 공공 미술관과 사립 미술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4 야노 케이지
〈악보와 도형〉 시리즈는 취미로 마림바를 연주해 온 작가가 아베 케이코의 곡 「일본 동요 변주곡」을 연습하며 악보에 적어 둔 것들, 이를테면 “조(調)가 바뀔 때 마다 색이 변하듯이”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같은 메모에서 출발했다. 야노 케이지는 곡을 마스터한 후 악보에 남은 화려한 흔적을 보면서 그 요소를 추출해 연주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악보를 떠올리고, 음악과 공명한 내면의 풍경을 담은 그래픽 악보 만들기를 시도한다.
야노는 작곡가가 오선 위에 음표와 악상 기호로 저장해 둔 마림바 선율을 상상하고 악보가 지시하지 않는 음의 틈새에 개입해 “곡의 이미지를 부풀리며” 도형을 그려 나간다. 어디까지 한 호흡으로 묶었는지, 한 음을 어떻게 시작하고 맺었는지 등 연주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곡에 형태와 질감, 색과 크기를 부여하고, 종이와 잉크로 무게감 있고 힘찬 마림바의 음색과 축적된 연습 시간을 물질화한다.
“연주할 때는 청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상상하는데, 추상화와 산수화의 중간쯤에 있는 듯한 〈악보와 도형: 일본 동요 변주곡〉은 결과적으로 내 고향 세토우치의 풍경을 닮았다. 연주와 그래픽에 고향 풍경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악보와 도형: 일본 동요 변주곡〉은 주로 악보의 악센트나 크레셴도 같은 악상 기호를 시각화한 작업이다. 잉크 농도는 음높이에 대응하고(낮은음은 연하게, 높은음은 진하게), 잉크 색과 도형 형태는 음색과 빠르기를 나타내며, 색을 쌓아올려 낮은음이 많은 곡의 특성을 묵직하게 표현했다. 〈악보와 도형: 리듬 송〉은 폴 스마드벡의 유명한 마림바 독주곡을 소재로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는 이 곡의 악보에는 종종 ‘멀게(distantly)’라는 표시가 등장하는데, 작가는 수평선이 희미하게 보이는 파도 없는 바다, 영국의 스태니지 에지 고원,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기차를 상상하며 점묘화처럼 음들을 공들여 표현했다. 망점이 미세하게 어긋나고 색을 정확하게 통제하기 어려운 리소 인쇄의 특성은 작곡과 연주의 다른 점, 사람의 연주와 아날로그 인쇄의 닮은 점을 암시한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연주한 「일본 동요 변주곡」, 「리듬 송」의 마림바 음원과 독립 출판물 『악보와 도형』 시리즈도 함께 선보인다.
2019/2023년
종이에 리소 인쇄, 42×29.7cm (14), 캡션 10×415.8cm, 부클릿(야노 케이지, 『악보와 도형: 일본 동요 변주곡』, 2019년, 종이에 리소 인쇄, 사철, 27.7×20/21×15cm, 20/20쪽), 사운드, 5분 4초
작곡
아베 케이코
악보와 도형: 리듬 송
2023년
종이에 리소 인쇄, 42×29.7cm (14), 캡션 10×415.8cm, 부클릿(야노 케이지, 『악보와 도형: 리듬 송』, 2023년, 종이에 리소 인쇄, 사철, 27.7×20/27.7×20cm, 14/16쪽), 사운드, 9분 24초
작곡
폴 스마드벡
감사한 분
미야노시타 시류

일본 가가와현 출생 / 일본에서 활동
야노 케이지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시각 아이덴티티 관점에서 자신만의 규칙을 세우고, 타이포그래피를 기반으로 전시, 패키지, 단행본, 아이덴티티 시스템 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을 선보인다. 시각 디자인을 매개로한 경험과 기억에 관심을 두고 의뢰 받은 일과 실험적인 창작 활동을 병행한다.
25 신도시
201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신도시는 바이자 공연장이고 레이블이자 소규모 출판사다. 〈신도시책〉은 지난 8년간 신도시가 해 온 다양한 활동의 결과물을 한데 모은 커다란 ‘아카이브 진’이다. 공간 신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종다양한 이벤트의 홍보를 목적으로, 의뢰받은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혹은 자체 콘텐츠로 제작한 포스터, 잡지, 스티커 등의 각종 인쇄물과 티셔츠, 모자, 가방 등을 여러 장의 판에 두서없이 붙여 관람객이 넘겨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랩북 형태로 전시한다.
신도시는 주로 실크 스크린이나 리소 인쇄를 활용해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즉흥적이고 실험적인 제작 방식과 소재도 적극적으로 택한다. 이런 이유로 제작물은 대부분 수작업을 포함하는 노동 집약적인 형태로 만들어진다. 관람객은 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회화, 일러스트레이션, 만화 등 여러 시각 장르를 오가는 8년의 결과물에서 서울, 나아가 동아시아 하위문화의 역동적인 흐름과 현재를 발견할 수 있다.
2023년
나무 구조물, 렉산,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종이에 리소 인쇄, 종이에 실크 스크린, 종이, 천, 250×120-262×22-120cm
협업
신도시 프로덕션에 참여한 다수의 창작자

이병재 한국 서울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이윤호 한국 안성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신도시는 2015년 서울 을지로에 만들어진 공간이자 다원 예술팀으로 미술가 이병재와 사진가 이윤호가 운영한다. 신도시 내에서 자체 진행하는 공연과 이벤트 외에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슈터스타–뉴 톱》,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도쿄 아트 북 페어》, 《do it 2017, 서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피크라 그래픽 디자인 비엔날레》 등에 참여해 기획, 전시, 디자인으로 외연을 넓혀 왔다. 신도시의 모든 작업은 예술가와 협업을 전제로 기획된다. 2016년부터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는 ‘SDS Production’을 설립해 음악가, 미술가, 디자이너, 만화가와 함께 하위문화 형식의 음반, 출판물, 영상물, 굿즈를 선보인다. 2020년에는 서울 연희동에 미도파 커피 하우스를 열어 신도시와 연계한 여러 이벤트를 꾸려 가고 있다.
26 손영은
〈종이울음〉은 종이나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 고대인의 기록 매체였던 양피지나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현대적 모습을 추적하고, 종이와 옷감의 물성에 관한 조사·수집과 읽는 행위에 관한 관심을 반영한 설치 작품이자 작품을 매개로 하는 낭독 공연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폭 1미터, 길이 100미터의 대형 두루마리는 공연을 위한 대본이다. 대본은 대개 작은 책자로 인쇄되고 대사와 지문은 공연자를 매개로 드러날 뿐 그 자체로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 대본은 공연의 중심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작품과 관객을 연결한다. 손영은은 대본의 형태, 대본을 읽는 방식, 대본이 연상시키는 소리로 종이와 신체를 연결하고, 대본과 관객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공연 〈종이울음〉에는 세 가지 소리가 등장한다. 하나는 대본을 낭독하는 작가의 목소리이고, 또 하나는 전시장 한쪽을 가득 채운 종이 사이를 오가며 그것을 대본처럼 들고 읽으려는 작가의 몸짓이 만드는 종이 소리이며, 마지막은 대본 속 이야기가 연상시키는 상상의 소리다. 느슨하게 연결된 글과 이미지가 인쇄된 대본은 두루마리 형태로 그 내용을 숨기고 있다가 작가의 낭독으로 조금씩 활성화된다. 이야기는 펄프를 떠서 얇은 종이를 만드는 데서 출발해 바다에서 수확한 김을 얇게 펴 말릴 때 들리는 소리로, 엄마와 바삭하게 김을 굽던 추억으로, 풀 먹여 손질한 모시옷이며 침구의 가슬가슬한 촉감으로, 둘둘 말린 옷감을 스르륵 펼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람객의 다양한 공간으로 이끌다가 빨간 카펫이 깔린 공연 장소에서 마무리된다.
공연이 끝나면 대본은 다시 작품이 되고, 이제 그것을 읽는 주체는 작가에서 관람객으로 바뀐다. 작가의 낭독과 함께 선형적으로 흐르던 이야기는 설치 작품 〈종이울음〉을 통해 관람객의 개별적인 읽기로 단편화되고, 재구성된다.
2023년
종이에 디지털 컬러 프린트, 종이롤 10,000×100cm, 철재 구조물, 199.5×125×100cm

한국 부천 출생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손영은은 이미지, 글, 책, 비디오, 옷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반영하는 공연을 만든다. 사람의 몸과 일상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제스처와 행동에 관심을 두고 익숙한 매체로 일상과 공연의 경계를 뒤집는 작업을 시도한다. 헤릿 리트펠트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27 이정명
〈레터스(글자)〉는 십자말풀이나 그림과 글자를 조합한 리버스(rebus) 퍼즐의 형식을 취하며, 각각의 머리글자를 이미지로 보여 주면서 고유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머리글자는 보통 글을 강조하거나 인쇄물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글의 시작 부분에 정교하게 장식해 넣는 대문자를 말한다. 글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공들여 장식된 대문자인 머리글자는 오랜 역사에 걸쳐 인접한 글과 복합적이고 상호 보완적이거나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연결 고리를 형성해 왔다.
관객은 커다란 벽면에 설치된 〈레터스(글자)〉를 감상하면서 각각의 글자가 단어를 형성하고 소리를 생성하며 이미지로 구현되는 과정을 통해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글자를 이야기꾼이자 축적의 주체로 여기며, 서사 안에서 무한한 이야기를 연계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연못에서 즐겁게 피리를 불던 개구리가 왜가리에게 붙잡혔다.
“그 위에서 뛰어(SPRING ON IT)”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애쓰며,
“조준해(AIM)”
결국 개구리는 자신이 불던 피리를 왜가리의 부리에 꽃아 “A”라는 글자를 만들며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고
“피해 (AVOID)”
거꾸로 뒤집힌 느낌표는 왜가리의 눈물로 변한 개구리의 결연한 의지를 시각화한다.
“눈물(TEAR)”
2023년
접착 시트, 420×840cm

한국 서울 출생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이정명은 그래픽 디자이너 겸 활자 디자이너다. 글자꼴을 생각과 감정, 삶의 궤적을 가진 하나의 캐릭터로 보고, 실험적인 활자체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정-리 타입 파운드리’를 운영한다. 〈임팩트 니우〉, 〈오르비스〉, 〈융카〉 등의 활자체를 만들었다. 언어와 타이포그래피 형식의 상호 작용에 관심을 두고 글쓰기, 음악, 비디오 등 여러 형태로 개인 작업을 선보이며, 타이포그래피, 시각 예술, 현대적 글쓰기로 인간의 감정 범위를 탐구하는 실험적인 예술 저널 『리얼타임 리얼리스트』를 발행한다.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헤릿 리트펠트 아카데미와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28 마니따 송쓰음
〈타자기 예술〉 시리즈는 마니따 송쓰음이 반복해 온 조판 작업에서 발견한 관심사들, 이를테면 글줄 사이, 글줄 길이, 여백의 흐름 같은 최소한의 타이포그래피 요소로 최대한의 실험을 이어 가는 개인 작업이다.
송쓰음은 타이포그래피로 매력적인 시각적 인상을 만들고 몰입감을 생성하는 데 주목한다. 그의 작품들은 방대한 정보를 한정된 지면에 배열하며 질서를 잡아가다가도 순서대로 규칙을 어기는 시도를 드러내고, 엄격한 그리드 곳곳에 반항의 요소를 숨겨 둔다. 이런 접근은 에너지 넘치는 복잡한 리듬 속에서 미세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음들이 포착되는 전자 음악이나 실험적인 팝 음악을 선호하는 취향과도 닿아 있다. 〈타자기 예술〉 시리즈는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요소를 반복하며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 글자가 진동하고 있는 듯한 공감각을 끌어낸다.
작가는 작업 의도를 묻는 말에 영감보다는 가설이나 실험, 관찰이나 반복으로 답하기를 선호한다. “정보를 분석하고 단어 뒤에 숨은 것들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쓰며 그 과정 자체에 영향을 받는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전하려는 바와 시각적 인상이 아주 가깝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한다.”
에어 볼드 프로
2019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49.3×29.3cm
레일웨이 얇은체
2019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49.3×29.3cm
자프 딩뱃
2019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29.6×20.9cm
프레스티지 엘리트 스탠다드 볼드
2019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29.6×20.9cm
프레스티지 엘리트 스탠다드 볼드 1–4번
2019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45×32cm (4)
두 영역 1, 2
2017년
종이에 오프셋 인쇄, 55.4×37.1cm (2)
담당자분께
2015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28.2×19.9cm (4)
테자다의 최후
2018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18.5×27.3cm (6)
항상
2015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21.9×43.8cm
캐릭터 리스틱 1–6번
2019년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42×29.7cm (6)

태국 나콘라차시마 출생 / 태국 방콕에서 활동
마니따 송쓰음은 그래픽 디자이너 겸 타이포그래퍼다. 방콕 예술 문화 센터의 전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고, 실험적인 매체를 뮤즈 삼아 다양한 예술가와 경계 없이 협업하며 디자인과 예술 영역을 자유롭게 오간다. 송쓰음의 디자인은 타이포그래피에 집중한 단행본 표지 디자인과 개인 작업 〈타자기 예술〉 시리즈로 대표되며,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기법을 활용해 과학적 요소가 혼재하는 신(新)기하학적 디지털 이미지를 선보인다. 2019년부터 국제 그래픽 연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9 소피 두알라
“〈검은 토끼를 따라〉에서 소피 두알라는 우리를 꿈의 세계로 초대한다. 지난 2년간 일어난 시민의 권리와 인종 평등을 위한 투쟁, 금융이나 사회 불안정, 팬데믹, 그에 따른 무기력한 봉쇄 등 사회 혼란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소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신화를 뒤집어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정치적 반전을 안겨 준다. 이것은 찬사와 우울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토마스 카스트로
〈검은 토끼를 따라〉는 전시장 2층 복도의 거대한 반원 창문 두 개를 가득 채운 그래픽 설치 작품이다. 소피 두알라는 자신에게 긴 팬데믹의 시작과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각인된 2020년과 이후의 몇 년을, 잊었던 기억과 감정을 끌어올려 슬픔과 분노로부터 강해지는 법을 배운 시간이라고 말한다. 성찰과 깨달음을 위한 만트라라고 해도 좋을 이 작품은 그 시간을 반영하며, 시각 언어와 정서의 상호 작용을 실험한다. 〈검은 토끼를 따라〉는 작가 스스로 “전환, 진화, 시간의 단절, 일시 정지”라고 정의하는 매우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동시대에 같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단번에 끌어들이면서 고통스러운 것과 화려한 것, 정치적인 것과 아름다운 것을 혼합한다.
이 작품은 토마스 카스트로가 기획한 그래픽 디자인 시리즈 《포스트/노/빌스》의 일환으로 2022년 6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처음 전시됐다. 작가와 큐레이터는 기존 작품의 분위기와 이야기 흐름을 유지하면서 문화역서울284라는 공간에 맞게 작품을 신중하게 재구성했다. 반복을 통해 율동적이고 운율적인 특성을 보이는 그래픽 패턴들은 빛에 따라 전시장 복도에 색색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복도 끝에 설치된 비디오의 ‘안에서(within)’라는 단어와 연결되면서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분법 대신 불안정 자체를 긍정하는 성찰적 태도를 권한다.
2022/2023년
접착 시트,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설치 약 850×425/795×393cm, 1분 51초

카메룬 야운데 출생 /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
소피 두알라는 시각 예술가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야운데와 파리를 문화적 배경으로 하며, 문화, 정체성, 진화, 감정, 문화의 렌즈로 디자인을 탐구한다. 의뢰 받은 작업과 개인 창작 활동을 병행하며 디자인과 예술 영역을 오간다. 자기 세대와 그들의 투쟁, 더 밝은 미래를 향한 열망에서 영감을 얻는다.
30 아스트리트 제메
〈대시를 긋는 형상들〉은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목소리이며, 역설적인—그렇다고 해서 가장 역설적이지는 않은—문장 부호인 “엠 대시(—)”에 스카프를 두른 작품이다. 이는 다다이스트 예술가이자 시인인 엘사 폰프라이탁 로링호벤(1874-1927)과 그녀의 광적인 엠 대시 사용에 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엠 대시(또는 엔 대시)의 목적은 다양하며—침묵의 차용, 불협화음 연기, 방해, 공간 점유 등을 위해 쓰인다. 엘사 폰프라이탁 로링호벤 남작 부인의 시에서 엠 대시는 언어와 그에 관한 음향적 해석을 결합하는 언어 요소로 쓰인다. 아스트리드 제메는 이를 확대된 형태와 식자공의 태도로 타이포잔치에 건넸다.
〈대시를 긋는 형상들〉과 함께 선보이는 오디오 작품에서는 문장 부호인 대시들이 제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차례로 돌아가며 자신들이 등장한 서지 사항, 연설과 인쇄의 역사를 내밀하게 말하고, 하인리히 (폰클라이스트)와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거트루드 (슈타인), 로렌스 (스턴) 혹은 대시의 여왕인 에밀리 (디킨슨)처럼 유명한 대시 애호가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엠 대시 스카프〉는 별다를 것 없는 실패로부터 탄생했다. 엠 대시 하나가 갑자기 종잇장에서 떨어져 나와서는 엘사 남작 부인의 창의적인 정신을 입을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해 버린 것이다—그 푹신한 표면은 종이 섬유와 잉크 가닥에서 탄생했다. 이 스카프를 착용한 사람은 한 순간 스카프로 변신해 글쓰기와 퍼포먼스 사이를 오간다.
2019년
사운드 설치(스테레오, 4분 25초), 대시 벽면 그래픽(접착 시트, 가변 크기), 단행본(제메, A., 『엘자 남작 부인의 엠 대시: 인쇄물, 시, 공연으로 만나는 대시 선집』, 마르크 페칭어 북스, 2019/2022년, 종이에 오프셋 인쇄, 무선철, 14.5×10cm, 96쪽), 엠 대시 스카프(인조 모피, 220×32cm, ed. 10/30)
협업
브라이언 데이(목소리)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생 /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
아스트리트 제메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브뤼셀, 요하네스버그, 이스탄불을 문화적 배경으로 하며, 빈 응용 예술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네덜란드의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디자인 작업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고, 타이포그래피와 그 발성에 주목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책을 펴내는 출판사 마르크 페칭어 북스를 공동 운영한다.
31 신동혁
“〈신양장표음〉은 ‘글자가 말과 음을 동시에 품을 수 있을까?’라는 가벼운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이 생각은 ‘글자가 말소리와 더불어 높낮이가 있는 음계를 품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로 이어졌고, 결국 아주 무모하게, 한글 제자 원리와 오선지에 음을 기록하는 방식을 한데 엮어 말과 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도구를 만들기로 했다.”
〈신양장표음〉은 기본 자음 글자(ㄱ/ㄴ/ㄷ/ㅅ/ㅇ)에 획을 더해 만든 자음 일부(ㅎ/ㅊ)와 기본 모음 글자 세 개 중 하늘을 본뜬 글자(·)를 바탕으로 한글과 음계를 짝지어 음표로도 기능하는 새로운 개념의 활자체로, 작가는 원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세운다.
• 이것은 활자체다.
• 오선지를 기준선으로 삼는다.
• 기본 자음 글자에 추가된 획은 가능한 한 음표로 치환한다.
• 근거가 불분명한 장식적 표현은 배제한다.
• 타자와 동시에 연주되도록 한다.
이 원칙을 공유하는 약 1,500자의 한글과 로마자 원도는 신동혁이 그렸다. 이를 바탕으로 한글과 로마자 폰트, 그리고 함께 쓸 문장 부호와 숫자, 특수 기호는 양장점의 장수영과 양희재가 만들었다. 완성된 〈신양장표음〉을 사용해 컴퓨터 자판을 치는 행위가 곧 연주가 되도록 하는 웹 사이트는 문정주가 개발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설치된 컴퓨터 자판으로 글자를 입력해 화면으로 그 형태를 보는 동시에 글자가 연주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23년
혼합 매체, 활자체 〈신양장표음〉, 부클릿(신동혁, 『신양장표음』, 화원, 2023년, 종이에 오프셋 인쇄, 중철, 30×30cm, 24쪽), 웹 사이트, COM의 피아노 테이블과 재즈 스툴
협업
장수영(한글 폰트 제작), 양희재(로마자 폰트, 문장 부호, 숫자, 기호 제작), 문정주(웹 사이트 개발)
제작 후원
문성인쇄

한국 성남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신동혁은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양식, 관습, 전통, 이론 따위를 재료 삼아 ‘지금, 여기’라는 맥락에 걸맞은 결과물로 갱신해 내는 데 관심이 많다. 2014년부터 그래픽 디자이너 신해옥과 함께 ‘신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32 양위차오
〈칠판 스크리보폰〉은 쓰기 동작과 구전 해설, 칠판 표현이 합쳐진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다. 양위차오는 네 가지 대만 민담과 이와 연계된 네 가지 한국 민담을 엮은 구술 즉흥 공연으로 관객을 이야기가 시작된 먼 과거로, 문자 대신 말로 이야기를 짓던 구술의 시대로 데려간다. 제목에서 ‘스크리보폰’은 라틴어에서 온 ‘scribo(쓰기)’에 그리스어에서 온 ‘-phone(소리)’을 조합한 것으로, 이 공연의 기획 의도를 보여 준다.
양위차오에게 고대 문자, 특히 갑골문 같은 표의 문자나 상형 문자는 과거의 활동과 이야기의 흔적을 저장한 오디오 테이프와 같다. 그는 문자에 암호화되고 압축된 내용에 접근하기 위해 분필을 들고, 칠판에 각 민담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갑골문, 한자, 한글 단어를 천천히 여러 번 쓰면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읊조리고 말한다. 이때 분필은 마치 레코드판의 홈을 따라가며 소리를 재생하는 축음기의 바늘과 같다.
이 작품은 말이 가진 의미 대신 그 표면에 해당하는 소리나 문자로 서사를 전하는 실험이다. 공연은 작가가 직접 수집, 분류, 대조, 번역한 민담을 바탕으로 중국어로 진행된다. 하지만 작가는 기이한 발성과 어조를 단어를 변형해 중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관객조차 그 뜻을 쉽게 알아채지 못하도록 만든다. 대신 가락, 장단, 목소리 연기, 몸동작, 즉흥 연주 등 구술적 특성에 기대어 섬세하게 소리를 전하고, 관객은 전시장에 제시된 한글 요약본으로 내용을 파악한 뒤 소리, 감정, 움직임을 따라 메시지를 유추하면서 암묵지에 기대어 다양한 상상의 길로 접어든다.
양위차오는 2018년부터 칠판 공연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칠판에 글자를 쓰는 행위는 글씨를 지워도 그 흔적이 남고 그 위에 새로운 글씨가 쓰여진다는 점에서 고고학적 지층을 연상시키며, 긴 시간 속에서 인간의 지식과 경험, 생각과 감정이 축적되고 변화해 온 방식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구전 민담은 인간이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이해해 온 보편적인 인식을 담고 있고, 여러 나라의 민담은 비슷한 서사를 공유한다. 그것은 블록 쌓기와 비슷하다. 대만에 A·B·C·D 블록으로 이뤄진 민담이 있다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는 B·C 블록으로 이루어진 민담이 있고, 또 다른 나라에는 B·C를 포함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있다. 구전 민담은 장단이나 관용적 표현 등을 사용해 기억하기 쉽게 설계돼 있어서,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타래가 풀리듯 자연스럽게 줄거리가 흘러나온다.”
2023년
사운드 설치(스테레오, 120분), 칠판용 나무 구조물, 220×242×6cm (5)

대만 타이베이 출생 / 대만 가오슝에서 활동
양위차오는 구전 민담을 전문으로 하는 해설가 겸 서사 예술가다. 구비 문학, 드라마, 영화, 서사를 연구한다. 대만 전역에서 〈세계의 민담〉이라는 강연 형식의 정기 공연을 선보이고, 실험적인 음향 공연 시리즈 〈아나모르포시스와 아나텍시스〉(민담)와 〈네크로만티아 디스퍼서스〉(시)로 대만 안팎의 예술 축제와 공연에 참여해 왔다. 2019년부터 가오슝 영상 자료원과 국립 가오슝 예술 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힐향(肸蠁)』(2023)을 펴냈고,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갑골문에서 파생한 단편 소설과 산문을 활발하게 기고한다. 민담과 인공지능의 협업에 관심을 두고 미드저니로 만화 『까치의 죽음에 관한 목격자들』(2022)을 출판하고, 인공지능 협업 공연 〈언어의 춤: 공명하는 민담〉(2023)에 참여했다.
33 이수지
이수지는 종이에 손바느질로 격자 구조를 짠 다음 다시 그 위에 검은색 실로 활자와 면을 수놓으며 조형를 만든다. 전시에 선보이는 일련의 작품은 작가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한 〈그래픽을 공예하는 매우 사적인 방법론〉의 평면 결과물들로, 활자와 그래픽을 오로지 손으로 구현한다는 형식을 공유한다.
“활자는 인쇄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요즘은 대부분 컴퓨터 시스템으로 구현된다. 우리는 자판으로 문서를 작성할 때 흔히 무엇을 ‘쓴다’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는 쓰는 것이 아니라 누르거나 치는 것이다. 나는 말 그대로 활자를 쓰기로 했다.”
작가는 직접 ‘글자 쓰는 기계’를 제작하고 이를 사용해 기하학적 모양과 수학적 비례를 갖춘 활자체 보도니를 그 조형 규칙에 따라 정확하게 쓰려고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글씨와 달리 손으로 ‘쓸 수 없는’ 활자의 특성을 재확인했다.
작품 형식을 완성한 다음에는 무엇을 쓸 것인가의 문제가 등장했는데, 내용에 무게가 실릴수록 보는 이의 시선은 어떤 식이든 방향성을 갖게 되고, 원래 전하고자 하던 바는 이미 그곳에 없는 ‘과정’이 되어 결과물 뒤로 사라졌다. 이후 작가는 시간과 함께 증발한 그 과정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화면에서 내용을 비우고 형식을 담는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 결과물로, ‘글자를 이미지로 대하기’라는 실천의 일부다. 이수지는 의도적으로 의미를 배제하면서 글자를 도형과 같은 이미지로 취급하고, 아직 단어가 되지 못한 글자를 관념화된 이미지로 다룬다. 손바느질이라는 공예 기술이 갖는 시간성 위에 반복과 변주로 쌓아 올린 활자와 그래픽, 평면에서 이탈하려는 듯한 구성 요소는 작품 표면에 드러난 의미 없음(얄팍함)과 대비되는 과정의 지난함, 즉 형식이 그곳에 있었음을 드러내는 시도이자 그 자체로 작가가 전하려는 내용이 된다.
2022년
종이, 잉크, 실, 81×183cm
콤포지션 02
2021년
종이, 잉크, 실, 91× 61cm
콤포지션 03
2021년
종이, 잉크, 실, 61×61cm
콤포지션 04, 05
2021년
종이, 잉크, 실, 91×56cm
빅 블랙 스퀘어스 01, 02, 03
2021년
종이, 잉크, 실, 81×56cm
익스트루딩 03, 04
2023년
종이, 실, 91×56cm

한국 서울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이수지는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미술과 디자인, 평면과 오브제의 경계 없이 작업한다. 홍익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고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정보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부터 형식의 개인화를 탐구하며 도구를 짓고 그로부터 평면 결과물을 얻는 과정을 거쳐, 현재는 조형적 결과물을 얻는 도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개인전 《Goodbye to the art》(라임스톤 북스, 마스트리흐트, 2023), 《Form forming, Formation》(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3), 《Liminal Phase》(OCI미술관, 서울, 2022)를 열었다. 2019년 얀 반 에이크 레지던시를 시작으로 여러 레지던시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 가며, 2023년에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다.
34 문정주
〈소리로 타이포그래피하기〉는 관객들이 작가가 제시한 글을 낭독하면 그 말소리를 문자로 변환해 화면 안에 실시간으로 조판하는 방식으로 말하기와 타이포그래피 사이의 연결성을 부여한다. 같은 글을 읽어도 그 소리는 발화자의 음색, 음높이, 세기, 타이밍(속도)에 따라 모두 다른 음성 값을 가지며, 때로는 잘못 읽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문정주는 이처럼 소리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를 매개 변수로 사용해 화면 안의 특정 판면 위에 여백을 만들거나 활자의 크기, 굵기, 위치 같은 타이포그래피 요소로 변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에 시각적 ‘성격’을 부여한다.
‘말하는’ 읽기를 ‘보는’ 읽기로 전환하는 이 작품은 말이 가진 시간성을 화면 안에 구체화하는 동시에,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발화자의 해석과 신체성에 기대는, 발화자 중심의 수행적 과정임을 말한다.
2023년
인터랙티브 설치, 웹 사이트, 마이크, 오디오 인터페이스, 보면대, 인쇄물
글 제공
김정현, 더 그레잇 커미션(전민경), 박상훈, 스튜디오 도감(김남주, 지강일), 욱림솔훈(김대욱, 김유림, 오은솔, 이영훈), 움직이는 세상(박다현, 윤신혜, 임나리), 이슬기

한국 서울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문정주는 그래픽 디자이너 겸 개발자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 전문 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인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주요 도구로 시청각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작업을 선보인다. 각각의 관심 분야를 연결해 정리된 결과물로 내놓는 것을 좋아하고, 귀여운 것을 보고 듣는 데서 활력을 얻는다.
35 박철희
“소리가 없는 영화를 보는 것은 괴롭다. (…) 완성된 한 편의 영화를 제삼자가 마음대로 해석해서 재편집할 기회는 흔치 않다. 작업 과정에서 모종의 죄책감을 느꼈고 여전히 좋은 일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담아 일본 성우 야마데라 코이치가 모 인터뷰에서 ‘더빙’에 관해 한 말을 제목으로 인용했다.”
⟨더 좋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망치기는 쉽다⟩는 1920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규설 감독의 무성 영화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에 스톱모션 방식으로 소리 요소를 문자로 올린 작업이다. 박철희는 무성 영화를 상영할 때 스크린 귀퉁이에서 대사와 몸짓으로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변사와 같이, 모듈형 타이포그래피를 일종의 ‘타이포그래피 변사’로 사용했다.
2023년
단채널 비디오, 흑백, 무음, 12분 50초
이 작품은 타이포잔치 2023과 한국영상자료원의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습니다.

한국 전라남도 광주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박철희는 서울에서 햇빛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한글 레터링 작업을 좋아한다.
36 오케이오케이 서비스
〈평행의 거리〉는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인 〈태양의 거리〉(1952)를 재해석한다. 전쟁이 삼팔선 부근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극장 구경은 가장 인기 있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이 사실은 전쟁 중에도 일상은 지속되고 모든 것을 잃은 그 상황에서도 피난민들이 새로운 도시에 모여 삶의 재미를 추구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평행의 거리〉는 이 지점에서 출발해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 가는 시민들의 삶에 주목한다. 오케이오케이서비스는 우선 영화의 오리지널 프레임들을 3D 공간에서 해체하고, 프레임들은 앞쪽에, 전쟁 당시의 일상을 보여 주는 신문 광고나 영화 포스터들은 그 뒤쪽에 배치한다. 이러한 프레임 중첩은 필름과 일상의 경계를 흐리는 시도다. 두 번째는 영화 속 클립들의 중첩이다. 클립들은 특정한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으며 이는 시간성을 무너뜨리는 시도다. 선형적 시간을 따르지 않고 돌아가는 클립들은 우리의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모두 넘실대고 있음을 나타낸다.
2023년
단채널 비디오, 흑백, 무음, 1분 57초
협업
길희연
이 작품은 타이포잔치 2023과 한국영상자료원의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습니다.

패리스 카심 싱가포르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미 킴 부이 벨기에 브뤼셀 출생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오케이오케이 서비스는 서울과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둔 독립 스튜디오로, 패리스 카심과 미 킴 부이가 운영한다. 디지털 콘텐츠에 관한 모든 영역을 다룬다. 주로 브랜드, 문화 기관, 개인과 일하며 인터랙션 디자인과 개발, 크리에이티브 코딩, 3D 디자인, 생성형 브랜딩 설루션에 관한 탐구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37 박고은
⟨노래하고 춤추던 정원⟩은 한국과 홍콩의 최초 합작 영화인 ⟨이국정원⟩(1957)을 소재로 한다. 이 영화는 소리가 유실돼 지금은 영상 필름과 대본만 전해진다.
⟨이국정원⟩의 여자 주인공 이름은 우연하게도 ‘방음(方音)’이다. 문자 그대로 한 자씩 풀이하면 ‘모서리 또는 방향’ 그리고 ‘소리’다. 사라진 소리를 대신해 화면에 어지럽게 흐르는 문자열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면, 영화 속 주인공의 몸짓 사이로 익숙한 소리의 질감들이 느껴지는 듯하다.
2023년
웹 사이트
이 작품은 타이포잔치 2023과 한국영상자료원의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습니다.

한국 성남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박고은은 그래픽 디자이너 겸 도시 속 사라진 것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연구자다. 서울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정보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복잡한 정보 데이터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데 관심이 많다. 단행본 『사라진 근대건축』(2022)을 썼고, 《걷기, 헤매기》(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3), 《최근 그래픽 디자인 열기(ORGD) 2022》(wrm space, 서울, 2022)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38 강문식
⟨감사한 분들⟩은 디자이너가 다루는 시각 요소가 소리와 어떻게 관계 맺고 소리를 어떻게 대체하며, 또 어떤 다른 상상이 가능한지를 살핀다. 강문식은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문자화된 정보에서 소리를 상상하고 재생산하며, 보고 읽는 경험으로 영화적 이미지가 어떻게 다르게 발생하는지를 이야기한다.
2023년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5분 7초
협업
이상우(글), 이민형(영상), 김종문(수어), 김혜경(움직임)

한국 서울 출생 / 한국 서울에서 활동
강문식은 계원예술대학교, 헤릿 리트펠트 아카데미, 예일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2018년부터 한국에 머무르며 작업을 선보인다.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 정체성을 구심점으로 마주치는 예기치 못한 상황, 다양한 변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흔적 같은 것들에 반응하며 새로운 잠재성을 만들 수 있는 사잇길을 찾아가고 있다.
39 『그래픽』 50호
프로파간다에서 발행하는 독립 잡지 『그래픽』은 타이포잔치 2023과 협업해 그 50번째 호를 ‘타이포그래피와 소리’를 주제로 한 특별 호 형태로 제작했다. 『그래픽』 50호는 전시에 드러나지 않지만 타이포잔치 사이사이 2022-2023 《사물화된 소리, 신체화된 문자》에서 출발해 타이포잔치 2023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를 완성하는 동안 기획팀이 여러 갈래로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 도움 받은 글과 책 등 타이포잔치 2023의 참고 문헌이라 불러도 좋을 콘텐츠들을 10편의 글과 200여 쪽의 이미지로 재구성해, 전시 도록과는 다른 관점에서 독자와 관람객이 타이포그래피와 소리라는 주제를 깊고 넓게 경험하도록 돕는다.
2023년
종이에 오프셋 인쇄, 무선철, 30×23cm, 264쪽
이 작품은 타이포잔치 2023과 계간 『그래픽』의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습니다.

2007년 1월 창간 / 한국 서울에서 발행
『그래픽』은 주류를 넘어선 그래픽 디자인의 새로운 흐름을 탐구하고 관련 현상에 통찰력을 제공하는 그래픽 디자인 전문지다. 매 호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 심도 있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외부 자금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에디터십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창의적인 기사를 만든다. 한국, 유럽, 미국, 아시아와 그 외 지역에 배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