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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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한

람한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이미지와 미디어에서 발견하는 이미지를 동일한 감각으로 인식하며 현실과 가상을 통해 전달받는 장면을 구분 없이 한 세계관 속에 나열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열화되고 복제되는 무작위의 이미지와 그 사이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시각적 질감, 색채 등을 재료로 사용합니다. 자신의 작품이 현실과 가상의 차원을 무시한 동시대의 익숙한 풍경화로 보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babo_F, Souvenir04_F(Cockpit), 세상의 마지막 밤

고양이를 들어 올려 벽에 붙였을 때 고양이가 벽을 밀어내는지, 얼굴과 몸이 저항 없이 벽에 닿는지에 따라 똑똑한 고양이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포스팅이 온라인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해 전국적인 밈으로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고양이 지능 분별법’으로 알려진 이 포스팅의 과학적 신빙성은 논외로 둔 채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사람들은 무념무상한 표정의 고양이가 벽과 하나가 되는 영상을 릴레이 게임에 임하듯 인터넷에 올리며 즐거워했지요. 당시 자신과 타인의 건강에 대한 염려증과 사람들의 안녕에 관해 깊이 고민하던 람한은 소위 ‘짤방’이라 불리는 이미지의 타래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뭉클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Babo_F는 이렇듯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이 무의미하게 던지는 허무한 농담이 주를 이루는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의 홍수 속에서 밈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목도한 작가가 이를 자신만의 시각 언어로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기념품’은 여행지가 불러오는 환상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기념품의 부질없음을 표현한 연작입니다. 관광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키링, 접시, 인형 같은 기념품 이미지가 여행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비행기나 호텔, 바다 이미지와 혼재됩니다. 이들은 각각 풍경화와 정물화 기법으로 대비를 이룹니다. 기념품 04_F(조종석)은 우주를 항해하던 여객기가 추락하며 멸망 직전의 세계에 있는 관제실과 나눴을 법한 대화를 상상으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추락한 비행체와 여름 바다, 그리고 그들이 꿈꿨을 세기말적 낭만을 품은 풍경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밤은 C. S. 루이스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작가가 ‘스펙트럼 오브젝트’라는 창작 콜렉티브의 일환으로 활동했을 당시 발제하고 그렸던 전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종교적 주제를 내포한 소설을 조금 더 일상적인 차원의 이야기로 받아들여 아포칼립스적인 혼돈이 아닌 불시의 고요한 멸망에 관한 소설의 한 장면을 상상하고, 이를 배경처럼 그려 넣었습니다. 단 한 명의 열외나 차별도 없이 닫히는 세계 속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작가는 결국 매일 밤 잠들기 전 여느 때와 똑같이 고양이를 끌어안고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상적인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무력하고 통상적인 일상과 대조되는 디스토피아 배경이 모순을 증폭시키는 작품입니다.


babo_F

  • 디지털 페인팅, 라이트 패널
  • 1220 × 1860 mm
  • 2017

Souvenir04_F(Cockpit)

  • 디지털 페인팅, 라이트 패널
  • 1360 × 1620 mm
  • 2021

세상의 마지막 밤

  • 디지털 페인팅, 라이트 패널
  • 1360 × 1360 mm
  • 2021
  • babo_F, Souvenir04_F(Cockpit), 세상의 마지막 밤
    람한, babo_F, Souvenir04_F(Cockpit), 세상의 마지막 밤

1. 밈의 정원

만들기 쉽고 공유하기 쉬우며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지만, 어느 정도 무의미한 ‘밈’은 디지털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세태적 변화의 상징이자 ‘일상적 개념주의’의 유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밈의 정원’에서는 디지털 세대의 시각 문자인 밈을 주제로 모방과 복제의 방법론을 사용해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현한 동시대 예술가들을 소개합니다. 현실적 규범을 전복하고 문화와 예술의 계급을 타파하려는 이런 태도는 사실 다다이즘과 팝 아트가 현대 미술에 남긴 유산과 닮았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팝 아트가 예술가들의 농담이었다면, 밈의 세계에는 그 어떤 경계와 한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밈의 정원’은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상호 소통 가능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시대에 놓인 동시대 예술가들이 계시와 상상을 통해 이미지를 재전유하는 방식에 주목합니다. 이런 시도는 예술의 형식이나 미학적 수사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들의 예술적 언어가 포스트 인터넷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고유성을 획득해가는지 살펴봄과 동시에 밈의 정치학이 동시대 시각 문화에 끼치는 영향을 고찰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1. 밈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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