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선언’에서는 분열과 결실, 열정과 직관을 주제로 동시대 화두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을 소개합니다. 글과 그림이 주고받은 이야기와 목소리를 다룬 ‘말하는 그림’, 바닷가의 암석화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채집하고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관찰의 대상으로서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흔적들’, 2015년 이후 나온 국내 도서 가운데 출간 당시에는 쉽지 않았을 시도를 통해 이후 북 디자인의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모은 ‘생명 도서관’의 세 챕터로 구성되고, 일곱 팀과 마흔여덟 권의 도서가 참여합니다.
기록과 선언
기록과 선언




1. 말하는 그림
책이나 포스터 등의 매체에 등장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텍스트로 적힌 주제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이 먼저 준비되고 그림은 그것을 해석하는 셈입니다. ‘말하는 그림’에서는 그 순서를 바꿔 그림을 먼저 그리고 이를 해석한 텍스트가 관람객과 만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이미지와 문자 사이의 상호 작용을 실험하고자 합니다. 여러 국가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들이 관심 갖는 동시대의 다양한 이슈들—인권, 젠더 이슈, 뉴 노멀, 범유행, 부동산 문제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선보입니다. 그림은 서로 연속되거나, 관련한 서사를 담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크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글과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과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해온 펜 유니온(김하나, 황선우)이 그림에 글을 보탰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관심사를 두고 그림과 글이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이 챕터가 글은 명료하고 이성적이며 그림은 모호하고 감성적인 표현이라는 고정 관념을 뒤집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획
이재민, 박이랑, 조효준
2. 흔적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문자’는 인간이 자연에 남기는 흔적이 되고, ‘문자와 생명’이라는 주제는 ‘인간의 흔적과 자연’의 관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지금의 시대를 ‘인류세’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을 변화시켜 남긴 흔적들이 인류세의 신생 문자로 읽히는 상상이 가능해집니다. 장한나는 뉴 락을 통해 이를 구체화합니다. 그는 인간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자연을 새로운 생태계로 바라보고 이전에 없던 변화된 자연물인 ‘뉴 락’을 추적하고 채집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챕터에서 작가의 채집과 기록은 새로운 문자를 발견하는 행위가 되고, 관람객들은 채집된 신생 문자가 전하는 경이로운 경고의 메시지를 해독합니다.
기획
이장섭
3. 생명 도서관
생명은 세포로 된 조직체에서 분할하고 전이되며 변화를 시작합니다. 책은 생각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글자의 조직체이며, 북 디자인은 여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수 세기 동안 북 디자인은 원칙을 내세우며 책다움을 확보하기 위한 규칙을 조직하고 축적해왔습니다. 현대의 북 디자인이 과거로부터의 문법을 답습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디자이너는 변이되어 생명을 확장하는 세포처럼 전통과 관습에서 빗겨난 시도로 책의 낯선 변종을 탄생시켰습니다. ‘생명 도서관’에서는 변종으로서의 북 디자인을 전시합니다. 2015년 이후 한국에서 출간된 책 중 표지와 내지 영역에서 비관습적 북 디자인의 시도를 수집하고 분류했습니다. 이 작은 도서관에서는 존재한 ‘최소한’의 규칙 및 정보에 관해 질문하고, 읽기와 보기의 경계에서 비스듬히 어긋나 있는 책들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기획
이재영 (6699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