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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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은

임혜은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글꼴 디자이너입니다. 금속 공예와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고, 몸에 익힌 공예적 작업 방식을 일러스트레이션, 영상, 폰트 디자인 등의 영역에 적용합니다. 2018년 글꼴 마포 다카포를 디자인했고, 현재는 산돌에서 글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꽃과 심장

문자를 이미지로 장식하고 강조하는 행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5세기 이전 등장한 ‘손가락표’(☞)에서는 책 귀퉁이에 정성스럽게 그려진 그로테스크한 손가락 끝이 독자가 주목한 부분을 탐욕스럽게 가리킵니다. 오늘날 상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하트’도 본디 심장을 상징하는 이미지였지요. 이렇듯 문자를 꾸미고 강조하려는 인간의 오랜 열망을 떠올리면 ‘어르신 짤’의 원초적 기원의 메시지는 기계적이고 서툴게 움직이는 빛, 무지개, 꽃, 금속 같은 자연물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주문처럼 읽힙니다.

메시지를 강조하는 요소들은 지나치게 화려하고, 통일된 양식이나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르신 짤’에 혼재된 장식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에너지는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임혜은은 이런 모습을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 존재한 장식적 문자의 모습과 루핑하는 아날로그 컷아웃 애니메이션을 사용해 정교하게 구현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긴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감행한 수많은 시도를 기리고, ‘어르신 짤’이 지닌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작품 속 텍스트는 주제에 잘 어울리는, 언제나 웃음을 주는 분의 애정과 염려로 점철된 메시지에서만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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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혜은, 꽃과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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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 좋은 아침

가족이 모인 휴대전화 대화창에는 구성원들의 안녕을 바라는 메시지가 오갑니다. 이때 주고받는 이미지 파일은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세상의 온갖 좋은 말들을 그러모은 텍스트와 고색창연한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이런 밈(meme)에는 가족의 행복을 비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유전자를 공유한 구성원들의 안녕은 아주 오랜 기원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참 좋은 아침’에서는 글꼴 디자이너와 사진가가 각각 ‘안녕의 인사’를 구성하는 두 축인 텍스트와 이미지를 사용해 그들이 받아본 메시지에 따뜻한 화답을 보냅니다. 인터넷 밈뿐 아니라 안녕의 인사가 오가는 실제 시공간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명절 아침 차례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병풍 앞에 차려진 다정한 모습의 오래된 TV들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조롱거리처럼 여겨지는 특정 종류의 밈을, 또는 가족끼리 주고받는 뻔한 인사말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으면 좋겠습니다.

3. 참 좋은 아침
거북이와 함께
두루미와 함께
거북이와 함께
작품을 느긋하게
두루미와 함께
작품을 한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