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주제
몸과 타이포그래피 (Mohm and Typography)
‘몸’은 가깝고도 멀었다. 많은 이에게 몸은 그저 ‘물리적 몸(Physical Body)’일 뿐이었다.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실질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사의 오랜 시간 동안 ‘정신’과 ‘신체’간의 관계 설정 속에서, 몸은 잊히거나 혹은 의식적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억압해왔다. 이성의 그늘 아래서, 정신과는 구분되는 육체성의 개념으로 조정 받았고 스스로를 단속해왔다.
하지만 ‘몸’은 그 자체로 물질이다. 그 어떤 정의된 관념이나 인식으로 지배할 수 없는 독립적인 산물이다. 세계와 접촉하고
만나며 의미를 생산하고, 나아가 의미의 전이에까지 기여하는 관계 중심적인 형태다. «타이포잔치 2017»을 준비하며,
결정되지 않은 경계의 공간과 과거-현재-미래로 구획되지 않는, 선형적 관념에서 벗어난 시간 속에서 ‘몸’과 ‘몸’이 만나면
만들어내는 ‘틈(특이점)’으로부터 몸이 지닌 진정한 의미와 미학을 발견해보고자 했다.
‘전시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상정은 없었다. 진정한 창의성은 예측 가능하거나 규정된 관념이거나 기획에서 발휘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많은 것을 큐레이터와 작가들에게 돌려보내고자 했다. 총감독의 역할이 여느 축구감독이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진실로 의미 있는 전시의 결과는 작가 스스로 건네는 몸짓과 관객의 몸짓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화학적 반응이라 믿었다. 그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일지라도, 다양한 해석과 반응으로
재생산되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출현한 «타이포잔치 2017»은 단역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몸’과 ‘글자’의 상징성을
풀어헤쳐, 서로 느슨하게 엮인 다양한 접속의 형태들로 완성해낸 교환의 시공간이다.
발췌: 몸, 바로 여기: «타이포잔치 2017»에 부치는 글
안병학 예술감독